사물에 담긴 역사와 정체성…티에스터 게이츠 한국 첫 개인전
박의래
2026-11-03 13:47:47
화이트 큐브 서울서 '아프리카 정물들'…12월 18일까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오래된 수석과 구두닦이 받침대, 추모 깃발, 롤러스케이트가 한데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온 사물들은 작가의 삶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미국 현대미술가 티에스터 게이츠(53)의 한국 첫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이 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개막한다. 조각과 도예, 음악을 통해 사물에 축적된 문화적 기억과 유산의 계승·보존·재생을 탐구하는 전시다.
게이츠는 버려지거나 잊힌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재활성화하는 작업을 통해 흑인 문화의 역사와 유산, 공동체의 삶을 조명해왔다.
그의 작업에서 사물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문화적 기록이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재료로 사용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게이츠는 "한국 도공들이 일본에 도예를 전수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일본 도예의 미학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다"며 "오늘의 미국도 흑인들의 노동을 바탕으로 형성됐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과 같은 '아프리카 정물들 #4'(African Still Life #4)는 조상을 기리는 제단을 연상시킨다.
중국 문인들이 감상하던 수석과 오래된 황동 구두닦이 받침대, 추모 깃발, 롤러스케이트 등으로 구성됐다.
이 중 롤러스케이트는 작가가 디자인한 것으로 일본 전통 신발에서 유래한 다비 디자인과 시카고 흑인 공동체의 롤러스케이팅 문화를 결합했다.
게이츠는 "제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소우주 같은 작업"이라며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물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삶과 예술적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벽면에는 '황금 같은 오후에 흘러가는 구름'(Receding Cloud at the Golden Time of Day), '검은 달'(Black Moon) 등 도자 연작이 걸렸다. 만다라와 불탑 등 불교의 상징적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게이츠는 "한국 미술을 공부하며 만난 동료들의 작품에서 느낀 '절제된 고요함'을 담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게이츠는 2022년 프랑스계 베트남인 DJ이자 음반 수집가인 딘 응우옌이 세상을 떠나자 그가 수집한 1만4천여 점의 음반 컬렉션을 인수해 보존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를 활용해 전시장 한 공간을 음악 감상실로 꾸몄다. 응우옌이 수집했던 음악을 들려주는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의 유산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 새롭게 이어지는 방식을 보여준다.
게이츠는 한국의 리스닝 바 문화에서 착안한 공간을 만들어 봤다며 "음악에 대한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게이츠는 조각과 도예, 건축,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흑인 문화의 역사와 유산, 공동체의 삶을 탐구해왔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도예 전통을 연구하며 재료와 공간, 공예를 문화적 탐구의 대상으로 다뤄왔다.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과 미국 뉴욕 뉴 뮤지엄,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23년 이사무 노구치상, 2018년 내셔 조각상 등을 받았다.
전시는 12월 18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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