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부터 스피커, 우주·항공 소재까지 끊임없는 확장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한지 제작 전통 지식과 기술' (서울=연합뉴스) 닥나무를 뜨고 말리며 정성을 들여 한지(韓紙)를 제작하는 기술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사진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 보유자 작업 모습. [문화재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5/yna1065624916278379_692.jpg)
![1천300년 된 무구정광다라니경 (서울=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이 공개한 무구정광다라니경.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5/yna1065624916278379_709.jpg)
![오랜 경험·기술 녹아든 한지…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앞둬 (서울=연합뉴스) 닥나무를 뜨고 말리며 정성을 들여 한지(韓紙)를 제작하는 기술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5/yna1065624916278379_206.jpg)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닥나무 껍질로 만든 전통 종이 한지(韓紙)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전망이다.
5일 유네스코에 따르면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는 한국 정부가 신청한 '한지 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을 심사해 대표 목록에 '등재'할 것을 권고했다.
오는 30일 중국 샤먼에서 개막하는 제21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정되면 중국의 선지(宣紙·2009년 등재)와 일본의 화지(和紙·2014년 등재)에 이어 한국의 한지까지, 동아시아 3국의 제지 기술이 모두 인류가 함께 보전해야 할 무형유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한중일 세 나라의 종이는 닮았으면서도 뚜렷하게 다르다. 먹의 농담(濃淡) 표현과 번짐을 극대화한 중국의 선지가 수묵 서화에 최적화된 도구라면, 창호나 부채, 판화용으로 얇고 고르게 펼쳐낸 일본의 화지는 특유의 정교함이 장점이다. 한국 한지의 독보적인 가치는 단연 '강인한 내구성'과 '보존성'에 있다.
◇ 천년을 버티는 힘…비밀은 '외발뜨기'와 '알칼리성'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 하여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 했다.
실제 1천300여 년 전 제작된 현존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오늘날까지 형태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도 한지에 있다.
이 강력한 내구성은 한지만의 독창적인 제작 기법인 '외발뜨기(물질)'에서 비롯된다.
중국과 일본이 틀에 종이물(지탕)을 담아 한쪽으로 물을 버리는 '쌍발뜨기'를 사용하는 반면, 한지장(韓紙匠)은 발을 가로와 세로로 교차해 흔들며 종이를 뜬다. 이 과정에서 닥나무 섬유가 격자무늬로 얽혀 쉽게 찢어지지 않고 수축과 팽창에 견디는 무적의 강도를 갖추게 된다.
또한 한지는 닥나무와 천연 점착제인 닥풀(황촉규)을 활용한 대표적인 알칼리성 종이다.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어 바스러지는 서양의 산성지와 달리,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부드러워지며 결이 살아난다.
한국의 한지와 중국의 선지, 일본의 화지는 시대를 거쳐오면서 각각의 독창성을 띠었고 다른 용도로 특화되어 왔다.
당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선지는 섬유가 한 방향으로 결을 생성하는 쌍발뜨기 침적법을 사용해 만든다. 그렇기에 먹의 번짐이 우수해 서예와 수묵 문인화 등에 최적화된 성질을 띤다.
일본의 화지는 삼지닥나무와 미츠마타 및 가지나무를 재료로 하며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아 7세기경 제작되기 시작했다. 쌍발뜨기를 통해 부드럽고 균일하며 얇은 종이가 특징이다. 판화, 부채, 등불, 우산과 건축·인테리어의 부재로 적합하다.
외발뜨기 기법으로 만든 한지는 보존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서화, 문서, 창호지,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복원지로서도 으뜸으로 친다. 문화재 복원 분야에서도 한지의 내구성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 창호지부터 스피커, 우주·항공 소재까지…미래로 확장하는 무형 유산
한지는 단순한 기록매체에 머물지 않고 조상들의 삶과 건축 기술로 확장된 '입체적 유산'이었다. 공기는 통과시키고 온·습도를 조절하는 창호지와 장판지는 오늘날 친환경 건축 자재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한지의 가치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 명성의 보존 기관들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보존복원연구소(ICPAL) 등은 고문서와 성화(聖畵), 귀중 문화재를 복원할 때 일본 화지 대신 한지를 공식 채택하고 있다. 유연하면서도 질긴 성질과 화학적 안정성 덕분에 세계 문화재 복원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에 더해 음향 전달력을 활용한 한지 진동판 스피커, 친환경 생분해 패션 의류에 이르기까지 한지는 첨단 친환경 소재로서의 지평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특히 가벼우면서도 열과 방사선에 강하고 변형이 적은 물리적 특성 덕분에 첨단 항공 우주 소재로서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우주는 영하 백 수십 도에서 영상 백 수십 도를 넘나드는 극심한 온도 변화와 강력한 방사선이 존재하는 환경인데 한지의 닥나무 섬유 구조는 열팽창 계수가 매우 낮아 온도 변화에 따른 변형이 적기 때문에 우주선 내부 부품이나 장비의 보호·절연재 연구 후보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의 우주 과학 실험 프로그램이나 관련 연구 분야에서 한지의 물리적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 등재가 확정되면 한지가 지닌 기술적 깊이와 역사적 보존 가치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게 된다며 "한지가 향후 또 다른 천 년의 미래를 향해 뻗어가기 위해 정부·업계·학술단체 등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앞장서 추진했던 이도희 한지장은 "유네스코 등재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고령화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업을 이어온 전통 한지장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한지의 산업적·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진 한지살리기재단 등재추진학술위원장은 "유네스코 등재는 한지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며 "장인들이 맘 놓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는 생태계 복원, 공공 수요 창출, 글로벌 복원재의 표준화, 친환경 첨단 소재로의 산업 확장 등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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