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별자 이야기 다뤄…"슬픔 판단하지 말고 자리 내어줘야"
![연극 '빈자리 없음'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028/yna1065624916269329_420_thum.jpg)
![연극 '빈자리 없음'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028/yna1065624916269329_810_thu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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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저는 예지가 죽은 이후에 예지를 이해하는 중이에요."
연극 '빈자리 없음'에서 자살한 친구 예지가 왜 죽게 됐는지를 추적하는 주은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친한 친구의 자살이라는 충격을 마주한 주은은 예지의 죽음을 곱씹고 원인을 찾으려 애쓰며 홀로 남겨진 시간을 견딘다.
초연 개막을 하루 앞둔 27일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시연된 연극 '빈자리 없음'은 주변인을 자살로 잃은 '자살 사별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센터가 젊은 공연예술가들을 발굴·지원하기 위해 선정하는 'DAC(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 중 한 명인 이경헌 작가의 신작으로, 28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상연된다.
작품은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겪은 주은을 중심으로 누군가를 잃어버린 슬픔과 죄책감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들여다본다. 신명민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박세인, 정다함 등이 출연한다.
고등학생 예지가 자살하자 주변 사람들은 주은에게 예지가 자살한 이유를 묻는다. 주은이 어떤 대답도 하지 않자 사람들은 주은이 예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주은은 학교에서 고립된다. 주은은 '내가 예지를 죽였다'며 자책하는 동시에, 예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인물들을 찾아 대신 복수를 하려 한다.
연극은 주은이 복수를 거치며 예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주은은 급우 다미가 예지를 따돌리고, 예지의 도움 요청을 담임 이림과 미술 교사 윤준, 부장 교사 현희가 외면해 예지가 자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예지를 죽게 만들었다고 모함해 이들에게 예지와 같은 고립감을 안겨 복수한다.
작품은 사별의 아픔 속 죄책감에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원망하는, 미성숙하면서도 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조금씩 실수하는 부족한 보통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별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예컨대 주은은 이림과 윤준이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버리고 자신의 누명을 벗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림과 윤준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주은을 원망하면서도 끝까지 주은과 다미를 보살핀다.
신명민 연출은 프로그램 노트를 통해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슬퍼할 수 없고, 같은 속도로 상실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통과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슬픔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수에 실패한 주은의 화살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잡아주는 이림의 '스스로를 원망하지 말라'는 설득에 자해에서 벗어난다. 작품은 죽음의 원인을 찾아 사망자의 빈칸을 메우는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빈칸을 남겨 두고 자신 혹은 타인의 상실감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의 가장 큰 연출적 특징은 극 중 내내 죽은 예지가 등장해 살아 있는 인물처럼 주은을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주은에게만 보이고 주은과만 대화하는 예지는 일종의 환상이지만, 정신분열적 증상이나 귀신이라기보다는 주은의 내면이자 기억을 상징한다.
작품 초반부에서 '나를 위해 복수를 해 달라', '내 편이 돼 달라'던 예지는 후반부에 가서 다음과 같이 진실을 말한다. "사실 애초에 나는 복수는 바라지 않았어. 니가 바라는 모습으로 나를 불러냈고 나를 만나며 매 순간 괴롭고 싶었던 거지." 예지의 모습은 자신의 불안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주은은 예지에게 안녕을 고한다.
작품은 담임 이림과 화해한 주은이 예지가 남긴 만화책을 들여다보며 죽은 예지를 추억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주은은 예지의 죽음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예지가 귤과 케이크를 좋아했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웃던 모습을 기억한다. 교실에서 예지의 빈 자리는 없어지지만, 주은은 "내가 예지의 빈 자리"라고 말하며 친구와의 관계가 남긴 자리는 사라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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