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공식 사과·피해 회복 조치 등 권고
![노루목재 희생자 위령비 [진실화해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4/yna1065624916277254_757.jpg)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절차 [진실화해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4/yna1065624916277254_989.jpg)
(서울=연합뉴스) 윤민혁 기자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전후 미군과 군경에 의해 민간인 46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사건들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3일 제8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충청지역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과 경북 영천·전남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 등 3건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진실규명이 결정된 피해자는 충청지역 29명(사망 26명·부상 3명), 경북 영천 11명, 전남 진도 9명 등 모두 49명이다.
충청지역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충북 영동·옥천군 등지에서 미군의 폭격과 포격 등으로 민간인 26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미군 작전 기록과 신청인·참고인 진술, 시신 수습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들이 마을이나 인근에 머물거나 일을 하던 중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희생됐다고 판단했다.
특히 1950년 7월 27일 영동군 양강면 구강리에서는 피난 중이던 주민들에게 미군의 기총사격(기관총·기관포 난사)이 가해져 2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됐다.
진실화해위는 이 가운데 사망자 11명과 부상자 3명 등 14명의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같은 해 10월 5일 옥천군 노루목재에서도 미군의 소이탄(고열의 화염탄) 폭격으로 민간인 5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주민들은 수복 이후 면사무소와 지서의 요청으로 군인들에게 밥을 해줄 땔감을 구하러 갔다가 폭격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는 이 가운데 5명의 희생 사실을 인정했다.
경북 영천에서는 1949년 2월부터 1950년 9월까지 민간인 11명이 국군과 영천경찰서 소속 경찰에 의해 적법한 절차 없이 살해된 사실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제4대 국회 보고서와 국가정보원의 '6·25 처형자 명단', 영천경찰서의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등을 토대로 희생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경찰 기록에 '살인'과 '방화' 혐의자로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판결문이나 형 집행 기록 등 적법한 사법절차를 거친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불법적인 민간인 희생으로 판단했다.
전남 진도에서도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월까지 민간인 9명이 진도경찰서 소속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살해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 기록에 '암살대원'으로 기재된 일부 희생자에 대해서는 실제 전투 중 사망한 것이 아니라 경찰에 연행된 뒤 살해된 점 등을 고려해 민간인으로 판단했다.
또 당시 진도 지역에서 암살대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고 희생자들이 주민 살해에 관여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영천과 진도 사건은 모두 2기 진실화해위에서 조사가 중지됐다가 이번에 진실규명이 이뤄졌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 회복 조치, 추모 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적 기록 정정과 역사 기록 반영 등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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