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제보] 멸종위기종 수달 로드킬 당했는데…지자체 사후처리 부실 논란

성진우 / 2021-09-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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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행정 절차 위반해 일반 동물 사체로 처리…"관행 따른 것"
▲ 도심지에 나타난 수달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10일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 신제지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이 헤엄을 치고 있다. 2020.12.10 sds123@yna.co.kr

▲ 지난달 30일 로드킬 당해 사체로 발견된 천연기념물 제330호 수달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로드킬 막자'…도로 표지판 [광양만녹색연합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OK!제보] 멸종위기종 수달 로드킬 당했는데…지자체 사후처리 부실 논란

지자체, 행정 절차 위반해 일반 동물 사체로 처리…"관행 따른 것"

[※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진성일(가명·60대)씨 제보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성진우 인턴기자 = 경기도에 사는 진성일씨는 지난달 30일 오전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숲 관통도로를 지나가던 중 수달로 추정되는 동물 사체를 보고 놀라 차를 세웠다.

진씨는 "자세히 보니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죽어있었다"며 "너무 참혹한 상태로 방치돼 있어 도로 가장자리 맨홀뚜껑 위로 옮겨 놓았다"고 전했다.

해당 숲 일대는 크낙새, 하늘다람쥐, 원앙새 등 20여 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사체로 발견된 수달은 제330호 천연기념물로 숲 인근 하천에서 서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박사는 "생물상 조사를 통해 해당 하천에 약 5마리 내외, 즉 한 가족의 수달이 서식한다는 점을 확인한 적 있다"며 "이번 사고를 통해 처음으로 수달 실체가 목격돼 센터 직원들도 당황한 상태"라고 말했다.

진씨는 이후 지자체에 로드킬(road-kill) 사고를 신고했다. 문화재보호법 제4조 '국가와 지방 자치단체 등의 책무'에 따르면 천연기념물 관리 책임은 각 지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A시는 수달 사체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소각한 뒤 문화재청에 신고해 천연기념물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자체, 박제·부검 여부 확인 없이 소각…"천연기념물 관리 부실"

천연기념물 사체가 고속도로를 제외한 관할 지역에서 발견될 경우 지자체는 직접 사체를 확인, 회수해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한다. 사체가 죽은 경우 '멸실신고', 다치기만 한 경우 적절한 구조 조치 후 '훼손신고'를 해야 한다.

이는 국내 천연기념물 현황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절차다.

신용운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박사는 "신고서에는 반드시 사체 증빙 사진을 첨부하게 돼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어떤 종인지, 더 정밀한 부검이 필요한지, 사체를 박제해 표본화해야 할지 등을 문화재청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A시가 지난달 31일 문화재청에 제출한 멸실신고서에는 수달 사체 사진이 첨부돼 있지 않았다. 또 A시는 사체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도 없이 소각 절차를 진행해 문화재청이 연구 가치가 있는 수달인지, 추가 조사나 부검이 필요한 지 등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이는 A시 내 동물 사체를 회수하는 부서와 천연기념물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 간 소통 부재 때문으로 풀이된다. A시 여러 부서가 사체 회수를 위해 각자 출동했지만 천연기념물 관리 부서는 사고 이튿날까지 사체 회수 여부를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A시 관계자는 "안전상 문제 때문에 위탁업체가 수달을 회수해 소각했지만 사진을 찍거나 별도 조사를 하지는 않았다"며 "도로 안전을 위해 일반적으로 동물 사체를 처리하는 관행을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동물 사체 회수 여부와 사체 종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내부 매뉴얼이 없어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며 "천연기념물 관리 지침을 새로 마련하고 통합적인 민원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 지자체 천연기념물 관리 실태 점검 필요성 대두

전문가들은 중앙 정부가 지자체의 천연기념물 관리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연기념물이 죽거나 다친 상태로 발견되었을 때 행정 절차에 대한 지자체의 이해도가 떨어져 효율적인 관리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로드킬로 유실된 천연기념물 국가 통계가 전수조사 결과보다 낮게 잡히는 게 현실"이라며 "지자체의 관리 부실로 많은 천연기념물이 실태 조사에서 빠진 채 유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모든 지자체의 천연기념물 관리 실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천연기념물 사체를 처리, 신고하는 명확한 행정 매뉴얼을 만들어 천연기념물이 관리 체계 밖에서 유실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해당 문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보고 문화재청과 함께 지자체 지도·감독을 포함한 여러 개선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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