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개발이 파괴한 갯벌, 생태 그리고 사람…다큐 '수라'

오보람 / 2023-06-11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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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작…새만금 마지막 갯벌 7년 기록
▲ 다큐멘터리 '수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큐멘터리 '수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큐멘터리 '수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큐멘터리 '수라' 속 한 장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새만금개발이 파괴한 갯벌, 생태 그리고 사람…다큐 '수라'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작…새만금 마지막 갯벌 7년 기록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밀물 때는 갯벌이 다 물에 잠기잖아요. 그러면 도요새 10만 마리가 염전에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그 녀석들이 날아가면 '쉬익'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려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활동가 오동필 씨가 2002년에 본 도요새 얘기를 들려준다. 요리조리 몸을 피하는 도요새를 따라 하는 모습이 40대 아저씨가 아니라 들뜬 어린아이 같다.

갯벌과 염전 사이를 오가며 하늘을 수놓는 새 떼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상상하려던 찰나, 이런 내레이션이 들리며 흥을 깬다.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마지막으로 경험한 동필 씨가 부러웠다."

이제는 옥구염전도, 이곳을 찾던 도요새 떼도 없다. 새만금에 방조제가 세워지며 갯벌이 사라진 탓이다. 물막이 공사가 끝난 이듬해, 쉼터를 찾아 남반구에서 1만5천㎞를 날아온 새들은 영문도 모른 채 떼죽음을 당했다.

다큐멘터리 '수라'는 새만금과 이곳에 남은 마지막 갯벌 수라의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작별', '어느 날 그 길에서', '잡식 가족의 딜레마' 등 동물권과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선보인 황윤 감독이 7년에 걸쳐 촬영했다.

작품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대규모 국책사업이 어떻게 갯벌과 생태계, 그리고 사람들을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한국 경쟁 부문 대상을,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는 새만금 간척사업 취소 청구 소송의 대법원판결이 나온 2006년 전후 전북 부안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당시 대법원은 갯벌 생태계 훼손을 우려한 환경·시민단체와 어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부 손을 들어줬다. 도지사는 "우리 후손들을 위한 일"이라며 건설사 직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른다.

황 감독은 2015년 새만금을 다시 찾는다. 놀랍게도 1991년 첫 삽을 뜬 사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여전히 포크레인이 갯벌을 헤집고 있다. 바로 옆에는 세계적으로 2천여 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위기에 처한 저어새들이 고개를 박고 먹이를 찾는 중이다.

몇 년 사이 새만금 일대 대부분의 갯벌은 사라졌다. 바닷물이 들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조개와 게 수천, 수만마리가 동시에 말라 죽었다. 먹을 것이 없어진 새들은 굶어 죽은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어민들은 조개를 잡던 손으로 이제는 방조제 근처 풀을 벤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제공한 대체 일자리다. 한 달 일해야 고작 20만∼3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어쩌다 조개껍데기라도 보게 되면 가슴을 치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어촌 마을은 흉가처럼 변한 빈집으로 가득하다. 어선은 녹슬어 곳곳에 버려져 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절망의 기록만 담지 않았다. 20년 넘게 갯벌만 바라보며 살아온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버지를 따라 새만금에 오곤 했던 승민 씨는 어느새 대학생 활동가가 돼 있다. 그는 수라 갯벌을 지키기 위해 멸종위기종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수집한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끝끝내 태동하고야 마는 생명의 경이로움도 보여준다. 10년이나 물이 통하지 않았던 흙을 파고드는 흰발농게의 모습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하루 두 번만 물이 흘러가도록 해주니 검은머리물떼새가 찾아와 알을 낳고 가족을 만들기도 한다. 인위적인 장애물을 단 하나만 제거해도 자연이 스스로 치유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수라 갯벌은 이제 막 회복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이 자리에 새만금 신공항이 들어설 계획이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이 계획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만약 공항 건립이 시작되면 새만금에서 마지막 남은 갯벌인 수라마저 없어진다.

황 감독은 마지막 내레이션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진다.

"수라는 고라니의, 칠면초의, 개개비의, 잿빛개구리매의, 쇠제비갈매기의, 가마우지의 영토…다시 봄이 오면 이들을 기다릴 것이다. 나와 아들, 내 친구들이 사는 이곳에서. 우리들의 고향 수라에서."

21일 개봉. 108분. 전체 관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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