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 환향하리라 믿는 이들"

임형두 / 2021-08-03 0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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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이혜옥 박사의 책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 북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 미국 작가 잭 런던(1876~1916) 촬영. [글을읽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언젠가 아리랑 고개를 넘어 환향하리라 믿는 이들"

재미 이혜옥 박사의 책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민요 '아리랑'이다. 한민족의 정서가 깃든 '아리랑'은 눈물과 한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에겐 아픔을 치유하고, 위안을 얻고, 희망을 찾는 어머니 품과 같다. 함께 듣고 노래할 때 모두가 저절로 하나됨을 느낄 만큼 신묘한 공감력을 안고 있다.

세계에 퍼져 살게 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흩어짐)처럼 우리 조상들도 1860년대 후반부터 한반도를 떠나 러시아의 연해주와 청의 만주로 대거 이주해 살았다. 혹독한 가난과 '백골징포' 같은 세금을 견디지 못해 너나없이 조국을 등진 것이다.

초기의 경제적 이유와 달리 훗날의 이주는 정치적 이유가 강하게 작용했다. 러시아는 일본을 막는 방패로 쓰고자 한민족을 끌어들였고, 러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의 조선인과 러시아군의 조선인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초래했다.

재미 역사학자인 이혜옥 박사는 신간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를 통해 1895년부터 1937년까지 극동 러시아와 만주에서 진행된 한민족 이산의 상처를 되돌아본다.

한민족의 초국적 디아스포라 공동사회에 방점을 찍은 가운데 자연재해와 정치적 분란, 사회적 차별대우를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 오로지 살아남으려는 의지만으로 북녘땅으로 이주해간 한민족이 어떻게 남의 땅에서 조선 고유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가지고 정체성을 지켜나가려 했는지 살핀 것이다.

저자는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를 '일방적으로 이주를 강요당해 뿌리가 뽑힌 조선의 이주민들이 모국을 향해 지속적으로 충성심을 갖고, 어디에 살고 있든 언젠가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 환향할 것을 믿는 이들'이라고 정의한다.

일본 식민지배 이전에 조선인들은 왜 일본군으로 러일 전쟁에 참전했을까? 러시아군에도 조선인이 가담하게 된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 저자는 1860년대부터 대규모로 발생한 조선인들의 러시아 연해주 및 만주 이주와 갑자기 조국이 없어지면서 새 조국이 돼버린 러시아에 충성을 하거나 일본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연해주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은 새로운 조국인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겨 조선이 일본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걸 막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럼으로써 언젠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러시아 편에서 싸울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일본을 위해 싸운 조선인들은 '협력 또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가운데 개화파를 중심으로 문명개화를 기치로 내걸고 조선의 앞날을 위해 일본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의 조선 민중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갈팡질팡해야 했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자신도 조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면서 지난 160년 동안 한반도를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다민족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살고 있는 한국인과 그 후세들에게 한국의 근대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집필하게 됐다고 말한다.

책은 '서양의 문을 통해 본 대한제국의 아리랑 민족', '북녘으로 향한 아리랑 민족', '러-일 전쟁과 아리랑 민족, 1904-05', '나라 잃은 아리랑 디아스포라인들, 1906-20', '결론' 등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글을읽다. 344쪽. 2만5천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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