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톰 안홀트 개인전 '낙화'

강종훈 / 2021-10-29 0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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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안홀트 '낙화' [학고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학고재에서 '2 AM'을 설명 중인 톰 안홀트 작가.

▲ 톰 안홀트 '낯선 사람' [학고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늘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톰 안홀트 개인전 '낙화'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꽃이 피면 언젠가 지기 마련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황홀한 시간이 지나가고 아픔과 상처가 남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에서 개막한 영국 출신 화가 톰 안홀트(34)의 개인전 '낙화'는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을 다룬다. 낭만적이지만 불안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사랑 이야기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사랑에 관한 서사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작가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시 제목이자 대표 작품 제목인 '낙화'가 사랑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정물화처럼 화병을 전면에 내세운 그림에서 한 송이만 바닥에 떨어져 있다. 홀로 진 꽃에서 고독과 고립을 발견할 수 있다. 화병에 꽂힌 꽃들은 아름답지만 곧 시들거나 떨어질 운명이다.

'2 AM'에는 둥근 달이 뜬 밤 한쪽 팔을 침대 아래로 늘어뜨리고 잠든 한 사람이 있다. 침대 밑에 웅크린 유령 같은 존재는 꿈속 세계를 괴롭히는 듯하다. 침대 위와 아래 공간이 대비를 이루며 사랑의 이면을 들춘다.

'낯선 사람'은 관람객이 동굴 속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둡고 습한 동굴 속의 한 남자는 뭔가 찾아 헤매는 듯하지만 형체가 명확하지 않다. 반면에 몇 걸음만 가면 닿을 것 같은 동굴 밖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고립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톰 안홀트는 아일랜드계 어머니와 페르시아계 유대인 혈통을 지닌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작품에는 서양과 이슬람의 문화적 요소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낸다.

작년에만 런던, 베를린, 로스앤젤레스, 코펜하겐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9년 학고재청담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2년 만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유화 12점, 수채화 12점 등 총 24점 등은 모두 신작이다. 경험과 상상, 여러 문화와 역사적 요소가 뒤섞인 각 작품은 독립적인 서사를 지니고 있지만, 한 영화의 장면들을 짜깁기한 것처럼 전시 안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예전에는 전시를 마치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시와 전시, 작품과 작품이 연결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어 "전시를 준비할 때 전체적인 맥락을 먼저 생각하고, 전시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 등도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 작품의 산능선을 가리키면서 "인왕산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설명했다.

색채와 정서가 대체로 어둡지만 밝은 작품도 눈에 띈다. 작가가 가장 마지막에 완성했다는 '자전거'는 한 남자가 청명한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악몽에서 깨어나면 일상이 더 평온하다.

작가가 "자상하게 어루만져주는 그림"이라고 소개한 작품은 자애로운 모성을 연상시키는 여인의 얼굴을 그린 '새로운 새벽'이다. 밤이 지나면 새로운 날이 온다. 11월 21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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