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학자가 쓴 한국 사상사…"순수성 둘러싼 투쟁 반복"
단군신화부터 현대 철학까지 다룬 '조선사상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성리학 개념인 '이'(理)와 '기'(氣)로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했던 일본 학자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가 한국 사상의 흐름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 '조선사상사' 번역서가 출간됐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8년간 한국철학을 공부한 저자는 도서출판 길이 펴낸 책에서 단군신화부터 현대 한국과 북한 철학까지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진 사상의 생멸과 변화를 논했다.
그는 고려시대 불교와 조선시대 유교를 예로 들면서 한국에서는 외부에서 온 사상이 기존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 사상사 특징으로 '순수성'과 '영성'(靈性)을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상사는 '순수성을 둘러싼 투쟁사'로 요약된다. 순수성을 지키려는 집단이 다른 진영을 '불순'하다고 비판하는 현상이 지속해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선이 독창적 사상을 개발하기보다는 중국 주자학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이런 견해의 근거로 든다.
저자는 "안전 보장과 통치 권력의 안정성을 이유로 한국에서는 사상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며 "사상이 순수성 획득을 지향하는 시기에는 대단히 약동하는 사회가 실현된다"고 설명한다.
이어 "순수한 사상의 현실적 효력이 상실되기 시작하면 정보 차단 등 부정적 회전이 시작되고, 사상의 순수성을 사수하고자 하는 운동이 국가와 구성원 생명을 열악하게 만든다"며 "생명의 열악화가 극도로 진전되면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거나 발명된다"고 말한다.
영성에 대해서는 "이성으로도 감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신 현상"이라며 하늘과 사람이 하나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 등에서 확인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 사상사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저자는 현대 한국에서 민주·민족·민중이라는 세 가지 개념의 실천과 투쟁이 이어졌다고 풀이한다.
그는 역대 대통령과 주요 사상가도 평가했다. 지난달 별세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시대와 함께 호흡한 사상가이자 도래해야 할 한국의 상을 정교하게 제시할 수 있는 천재였다고 소개했다.
책은 국내 학자도 쉽게 집필하지 못하는 사상 통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일제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설명 중에는 한국인 대부분이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다.
예컨대 저자는 "조선이 착취를 받아 도탄의 고통에 허덕였다는 역사관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행위에 대한 반성은 명확히 기술하지 않았다.
이신철 옮김. 386쪽. 2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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