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세대의 눈에 비친 '헬조선'의 풍경…영화 '한국이 싫어서'

이영재 / 2023-10-04 17: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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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뉴질랜드로 떠난 20대 여성 이야기
▲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MZ 세대의 눈에 비친 '헬조선'의 풍경…영화 '한국이 싫어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뉴질랜드로 떠난 20대 여성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스물여덟 살 직장인 계나(고아성 분)는 한국 사회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겹다.

한국에서 '경쟁력 없는 인간'인 그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표범에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처럼 '멸종돼야 할 동물'인 것만 같다.

계나에게 한국은 '헬조선'일 뿐이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탈(脫)조선'이다.

4일 막을 올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한국이 싫어서'는 탈조선을 택한 청춘의 이야기다. 장강명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이 영화는 새 삶을 찾아 뉴질랜드로 떠나는 계나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족과 작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국에서 계나의 삶을 채운 건 인천과 서울 강남을 오가는 지옥 같은 출퇴근 길, 온갖 불합리를 견뎌야 하는 직장 생활, 출신 성분으로 사람을 서열화하는 문화 같은 것들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계나의 좌절감은 꽤 잘사는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극에 달한다.

뉴질랜드에서 계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만만치는 않다. 계나는 영주권을 따기 위해 영어 실력을 끌어올리고, 학위를 따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백인들의 인종차별도 넘어야 할 벽이다.

이 영화는 계나의 삶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대신, 한국에서의 삶과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두 개의 삶을 대비한다. 한국은 대체로 어둡고 쓸쓸한 겨울의 풍경으로 그려져 헬조선의 느낌이 극대화된다.

한국의 늦은 밤 술자리에서 계나와 친구들은 한국을 떠나는 것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다고 고백하는 친구도 있고, 한국에 남아 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호기롭게 주장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싫어서'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관객을 가르치듯 메시지를 내놓기보다는 한국 사회를 현실 그대로 바라보는 데 주력한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MZ 세대로 불리는 이 시대 청춘의 시점을 충실히 따른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일 것이다.

곱씹어볼 만한 질문도 던진다. 한국 사회에서 불행한 사람이 늘어갈수록 역설적으로 행복이란 말은 더 많이 쓰이고, 그러면서 행복의 의미도 점점 공허해지는 게 아니냐는 계나의 의문 같은 것들이다.

한국에 남는 게 맞는지, 외국으로 떠나는 게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계나가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흔히 말하는 성공과 실패를 넘어 정신적 성장의 길로 갈 수 있었던 건 추위가 싫어 남극을 떠났다는 동화 속 펭귄처럼 진정한 행복을 찾아 모험에 나서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고아성은 한국 사회에서 고뇌하는 청춘을 빼어나게 연기했다. 그의 연기는 마치 MZ 세대를 대변하는 듯하다.

장건재 감독은 '진혼곡'(2000), '싸움에 들게 하지 마소서'(2003), '꿈속에서'(2007) 등 단편 연출을 거쳐 '회오리바람'(2009)으로 장편에 데뷔했다. 이어 장편 '달이 지는 밤'(2020),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2022),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2022) 등을 연출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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