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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철 '무물 21-7' [아트스페이스3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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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철 작가 작업도구 [아트스페이스3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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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아트스페이스3에서 개인전 여는 최상철 작가. |
조약돌이 천번 구른 흔적…그리지 않고 그려진 그림
붓 쓰지 않는 작가 최상철, 아트스페이스3 개인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한쪽에는 '좌(左)', 다른 쪽에는 '우(右)'라고 쓴 작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던진다. 검정 물감을 듬뿍 바른 조약돌을 굴릴 시작점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작가가 처음 돌을 던져 '좌'가 나오면 캔버스 왼쪽 꼭짓점에서 그림이 시작된다. 시작점에 잠시 머물며 흔적을 남긴 조약돌은 물감이 마를 때까지 캔버스 위를 구른다. 또 한 번 '좌'가 나오면 첫 번째 돌이 출발한 바로 옆에서 구르기가 시작된다. '우'가 나오면 반대편 모서리에서 굴린다.
이런 방식으로 1천 번을 굴리면 캔버스 좌우로 굵은 기둥이 선다. 대개 좌우 높이가 비슷하지만, 왼쪽 기둥이 좀 더 높이 솟았다면 막대 던지기에서 '좌'가 더 많이 나왔다는 뜻이 된다.
독창적인 추상 회화를 발전시켜온 최상철(75)의 '무물'(無物) 작업 방식 중 하나다.
돌을 10번 굴린 흔적이 담긴 작은 작품 100개를 모은 대작도 있다. 결국 돌을 1천 번 굴려 완성한 셈이다. 이번에는 방향을 표시한 고무 패킹을 던진다. 패킹이 떨어진 자리로 돌이 구르기 시작할 위치와 방향을 정한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3에서 개막한 최상철 개인전은 조약돌을 1천 번 굴려 완성한 신작 14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개입을 최소화하고 우연의 법칙에 맡겼지만, 각 작품은 저마다 뚜렷한 조형미를 드러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긴 끈이나 철사에 물감을 묻혀 화면에 던지기를 반복하는 등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다가 지금은 조약돌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붓이란 인간이 가장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개발한 도구인데, 나는 그것을 버리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상철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한 이래 50여 년간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일궈왔다. 특히 최근 20여 년간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그리는 실험을 계속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잘 그린 그림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고, 세계적인 미술관에 그런 작품들이 소장돼있다"며 "그런데 나는 그림이란 것이 잘 그리기만 하면 좋은 것일까 하는 의문을 오래전부터 가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잘 그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내가 하는 것은 그림이 아닐지도 모르고, 너무나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검은색만으로 이뤄진 추상화이기에 최상철의 작품은 단색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예술적 기교보다는 우연과 간단한 법칙에 따르기 때문에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결과물을 떠나 제작과정에 예술, 그림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고, 수행과도 같은 1천 번의 굴림에는 고도의 집중과 노력이 따른다.
작가는 "누구나 아는 잘 그려진 그림은 상식의 틀 안에 있는 것"이라며 "상식적인 결과물 너머의 것도 뭔가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이 너무 경쟁의 도구가 되는 것 같다"며 "상 받고 이름을 알리고 잘 팔리는 것이 그림이 해야 할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평론가 박겸숙은 "최상철은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을 완성한다"며 "작가는 어떠한 인위적인 더함이 없는 잇는 그대로의 결과를 마주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해왔고, 끊임없이 시도해온 결과물이 바로 '무물'"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7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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