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의 자화상…진 마이어슨의 자전적 이야기

강종훈 / 2021-09-08 08: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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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갤러리2·부산 조현화랑 개인전 '리턴'
▲ 진 마이어슨 'SELF IMMOLATOR' [갤러리2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진 마이어슨 작가 [갤러리2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불 속의 자화상…진 마이어슨의 자전적 이야기

서울 갤러리2·부산 조현화랑 개인전 '리턴'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한국계 미국인 작가 진 마이어슨(49)은 지난 2019년 일본 사도섬(佐渡島)을 찾았다. 북한 소형 어선이 난파돼 그곳까지 흘러왔다는 것을 들은 뒤였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의도치 않은 곳으로 간 어선과 선원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인천에서 태어나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미국으로 입양된 진 마이어슨은 사도섬에서 '노 디렉션 홈(NO DIRECTION HOME)'이라는 영상을 촬영했다. 입양아로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읊조린 작품이다. 북한 어선의 잔해로는 회화와 오브제 작품 '시퀀스 2'를 제작했다.

부산 조현화랑과 서울 갤러리2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리턴(RETURN)'은 그가 사도섬의 북한 어선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리턴' 프로젝트의 회화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동안 작가는 다양한 이미지를 뒤틀고 일그러뜨려 왜곡하는 방식으로 세상 풍경을 재해석한 그림을 선보여왔다. 주로 건물 등을 그림에 넣어 이질적으로 배치했다.

이번 전시 작품 역시 기존 작업의 계보를 잇지만,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인 사도섬 영상과 맥을 같이 하는 작품인 만큼 그림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이글거리는 불꽃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을 그린 'SELF IMMOLATOR'로, 작가가 좀처럼 그리지 않았던 자화상이다. 얼굴 이목구비가 뚜렷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마치 불 속에 서 있는 듯 보인다.

진 마이어슨은 성인이 된 후 인천 보육원을 찾아갔지만 오래전 화재로 자취를 감췄다. 어린 시절 몇 년을 보낸 공간과 그 기록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불이 어떤 역사를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또 모든 것이 온라인에 저장되는 지금 시대에는 불이 그때처럼 기록을 지우지 못한다는 생각도 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와 불에 대한 생각을 그림에 담았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자화상으로부터 다른 작품으로 연결되며 주제는 인간 존재와 그들이 속한 장소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전시는 회화로 구성됐지만 많은 대화와 생각 등 많은 과정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고,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화상이 출발점이 돼 여러 작품으로 뻗어나갔다"라며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진 마이어슨은 뉴욕과 파리, 자카르타, 홍콩, 서울 등 여러 도시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했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도 않던 그가 자전적 요소를 담은 것은 최근 나타난 인생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지난 2019년 한국인 큐레이터와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했고, 이 땅에서 딸을 얻었다.

서울 갤러리2 전시는 이달 25일까지. 부산 조현화랑 해운대점 전시는 이달 26일까지, 달맞이점 전시는 다음 달 24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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