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엄뫼' 모악산이 품은 금산사

현경숙 / 2025-10-15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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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만경평야의 '모태' 모악산과 미륵 신앙 성지 금산사
▲ 모악산과 금산사[사진/백승렬 기자]

▲ 108배 하는 외국인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사진/백승렬 기자]

▲ 국보인 미륵전[사진/백승렬 기자]

▲ 방등계단과 오층석탑[사진/백승렬 기자]

▲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탑[사진/백승렬 기자]

▲ 견훤성문[사진/백승렬 기자]

▲ 미륵전 내부 미륵불과 협시보살[사진/백승렬 기자]

▲ 모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구이저수지와 산줄기[사진/백승렬 기자]

▲ 벽골제 전망대에서 바라본 김제 들판[사진/백승렬 기자]

▲ 동학 원평집강소 유적[사진/백승렬 기자]

▲ ㄱ자 모양으로 꺾인 금산교회 내부[사진/백승렬 기자]

▲ 수류성당[사진/백승렬 기자]

▲ 증산교 본부[사진/백승렬 기자]

[여행honey] '엄뫼' 모악산이 품은 금산사

김제·만경평야의 '모태' 모악산과 미륵 신앙 성지 금산사

(김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엄뫼' '큰뫼'는 모악산(해발 793.5m)의 옛 이름이다. '어머니 산' '큰 산'이라는 뜻이다. 김제·만경 평야와 동진·만경강을 낳은 모악산 자락에 불교 미륵신앙 성지인 금산사가 폭 안겨 있었다.

◇ 내비 둬!! … '나는 쉬고 싶다'

절 한 번 한 뒤 구슬 1개 꿰고, 다시 절 한 번 한 뒤 구슬 1개 꿰고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모악산 기슭에 있는 금산사에서 외국인 열네 명이 108배와 108염주 꿰기를 하고 있었다.

의자나 소파가 아닌 법당 마룻바닥에는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눈치였으나 경건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절과 염주 꿰기는 템플스테이(사찰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2023년 새만금 잼버리 대회 이후 이곳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외국인이 부쩍 늘었다.

어미가 자식을 품듯 만물을 포용한다는 모악산 기운 때문일까.

푸른 잎이 무성하면서도 위압적이지 않고 아담한 활엽수 숲과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계곡 덕분일까.

금산사 경내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해지는 듯하다.

금강문과 사천왕문에 걸린 안내문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쉬고 싶다' '내비 둬(let me be)'.

안내문은 그저 쉰다는 경지를 템플스테이에서 체험해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좋다, 싫다 하는 분별 때문에 온갖 번민과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본다.

분별하는 마음을 내버려 두는 것을 '방하착'이라고 한다. 내려놓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경지가 마음 쉬는 도리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20∼30대로 보이는 외국인들은 호주에서 왔다.

금산사를 찾은 것은 방하착의 경지가 궁금해서일까.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서구에서는 종교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불교와 명상을 향한 관심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 이쪽을 봐도 '보물' 저쪽을 봐도 '보물'

금산사가 간직한 국보 1점과 보물 10점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금산사 본전 앞 너른 마당에는 오래된 보리수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이 나무 그늘에 서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국가 지정 문화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미륵전, 방등계단, 오층석탑, 육각다층탑, 석등, 대장전, 석련대, 노주 등 총 8점의 국보와 보물이다.

국보인 미륵전은 국내 유일의 3층 목조 사찰 전각이다.

바깥에서 보면 3층이지만 실내에 들어가면 1층부터 3층까지가 하나의 층인 통층이다.

이런 구조는 거대한 불상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내부에 세워진 미륵부처님은 키가 11.82m이다. 실내에 모셔진 불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크다.

양옆 협시 보살들의 높이는 8.79m이다.

계단은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는 의식이 행해지는 곳이다.

방등계단에서는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 불자도 계를 받을 수 있다.

출가자만 계를 받을 수 있는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과 다른 점이다.

계단 위 석종 형의 사리탑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오층 석탑은 고려 때 조성됐다.

경종 4년(979)부터 성종 원년(982)에 걸쳐 세워졌다. 역시 석가모니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검은색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탑도 희귀한 석탑이다.

신라의 소박한 석탑에서 고려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탑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장전 앞 석등은 깨달음의 빛을 상징한다. 특정한 위치에 서면 화창 사이로 대장전에 모셔진 금빛 불상이 보인다. 대장전은 보기 드문, 목탑 형식의 전각이다.

석련대는 불상을 올려놓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이다. 높이 1.67m, 둘레 10.3m에 이르는, 대형 연화대좌이다.

돌로 만든 좌대 위에 보주(구슬 모양 장식)가 있는 노주는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정확하지 않다. 고려 전기 유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금산사에는 당간지주, 심원암 삼층석탑, 혜덕왕사 탑비 등 보물이 3점 더 있다.

이 보물들은 절 입구나 깊은 산중에 있었다. 절에 큰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깃발을 걸어 알리는 일종의 안내판이 당간이고, 이를 지탱하는 것이 지주이다.

8세기 후반에 제작돼, 금산사가 보존하고 있는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오래된 당간지주는 화려한 조각 기법이 특징이다.

심원암 삼층석탑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상륜부를 제외하면 온전하게 보전돼 있었다.

혜덕왕사 소현(1038∼1096)은 고려 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스승이었던 고승이다.

◇ 견훤성문과 황토 맨발 산책길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금산사 입구에 있는 견훤성문도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웠으나 스스로 이를 멸망하게 만든,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그는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해 왕건에게 투항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금산사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이 성문은 아치형의 석조물이다. 언제 쌓았는지 정확하지 않다.

견훤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맨발산책길은 이용자가 많은 명소였다.

연일 내린 비로 물을 잔뜩 머금은 황토 깊숙이 발이 빠져들어가 종아리까지 흙이 차올랐다.

황토 속의 원적외선과 항균 물질은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면역력을 높인다고 한다.

◇ 미륵신앙 성지…금산사

백제 법왕 1년(599) 창건된 금산사는 국내 제일의 미륵신앙 도량으로 꼽힌다.

통일 신라 혜공왕 2년(766) 진표율사가 높이 33척의 철 미륵불상을 세운 후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이 됐다.

미륵신앙은 미래 부처인 미륵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는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변혁을 원하는 백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미륵신앙의 참뜻은 단순히 구세주를 기다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그것은 '십선계'를 실천하면서, 참회와 자비를 행하는 데 있다고 한다.

십선계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 불탐욕(不貪欲), 부진에(不瞋恚), 불사견(不邪見)이다.

살생, 도둑질, 음란, 망언, 이간질, 악한 말, 꾸임 말, 탐욕, 성냄, 그릇된 견해를 금한다는 내용이다. 어려운 수행이라기보다 기본 덕목들에 가깝다.

◇ 김제·만경 평야를 키운 모악산

모악산은 전북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김제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다보인다.

발아래로는 한국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김제, 만경 평야가 펼쳐진다.

이 평야들의 젖줄 구실을 하는 만경강, 동진강, 구이 저수지, 금평 저수지, 안덕 저수지, 불선제, 증언제, 갈마제로 흘러드는 물이 모악산에서부터 시작된다.

김제 평야 중간에 있던 벽골제는 삼국 시대 만들어졌던 국내 최대(最大)·최고(最古) 저수지로, 모악산을 수원으로 했다.

벽골제는 현재 저수지는 없어지고 제방 일부만 남아 있다.

큰 관광지로 개발된 벽골제 전망대에 서니 지평선이 장대하게 펼쳐졌다.

산지 지형인 한국에서는 산에 막혀 지평선을 보기 어렵다.

김제시는 김제 평야에서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며 가을이면 전통 농경문화를 주제로 지평선 축제를 연다.

동진강, 만경강 하구에는 세계 최장인 새만금방조제가 건설돼 있다. 김제, 만경 평야를 일컫던 금만평야를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새만금'이다.

모악산은 대지만 낳고 키운 게 아니다.

불교 성지인 금산사를 포함해 여러 종교 성지를 품고 있어 종교 평화 지대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금산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학 집강소, 증산교본부 및 증산법종교본부, 금산교회, 수류성당이 있었다.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성지이다.

집강소는 동학 농민군이 전라도 고을 관아들에 설치한 일종의 자치 기구였다.

김제 원평 집강소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집강소 유적이다.

이 집강소 건물은 백정 출신인 동록개가 대접주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며 헌납했다는 사연을 안고 있다.

증산교본부는 1901년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1871∼1909)이 최초의 경전을 만든 곳이다. 증산은 그의 호이다.

금산교회는 미국 선교사 L.B. 테이트가 1905년 처음 세웠다.

지금 남아 있는 교회 건물은 1908년 지어진 한옥 양식이다. 남녀유별의 옛 관습을 존중해 실내 구조가 ㄱ자 모양으로 꺾인 것이 특징이다.

이 구조로 인해 남녀가 서로 보이지 않게 앉을 수 있었다.

수류성당은 1889년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본당이다.

한국 전쟁 때 옛 성당이 소실되고 50여 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1959년에 재건됐다.

이 종교문화유적들을 순례하는 '모악산 평화의 길, 수류금산'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금산사에서 지족(知足), 금산교회에서 수용, 수류성당에서 자족(自足), 증산법종교본부에서 상생, 집강소에서 존중을 배우고자 한다고 안내문은 설명하고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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