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을 단련하고 휴식하는 문장대와 세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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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주사와 속리산[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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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주사 전경. 금동미륵대불과 사찰 중심부의 팔상전이 보인다.[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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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웅보전과 사천왕석등[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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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마애불[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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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봉에 올라 법주사를 내려다보는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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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이품송[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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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조길 옆 저수지[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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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대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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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고 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외국인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사진/백승렬 기자] |
[여행honey] 속세를 떠나 피안으로 이끄는, 속리산 법주사
심신을 단련하고 휴식하는 문장대와 세조길
(보은=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속세를 떠나 도착한, 불법(佛法)이 상주하는 곳, 곧 속리산 법주사이다.
법주사는 성속의 경계,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할까.
그만큼 속리산과 법주사를 둘러싼 평화롭고 청정한 자연은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만든다.
법주사 총무국장 겸 템플원장인 성우 스님은 속리산에 들어서면 힐링과 명상은 이미 반쯤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도시 아닌 자연 속에서 해야 하는 것이 마음 수련인가 보다.
◇번뇌와 욕망을 떨치고 싶으면 여기 오세요
속리(俗離)와 법주(法住)
법주사는 553년 의신 조사가 창건하고 776년 진표 율사가 중창한 천오백 년 고찰이다. 의신 조사는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와 절을 지을 곳을 알아보던 중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산세에 탄복해 이곳을 창건지로 정했다고 한다.
또 진표 율사가 속리산에 오자 밭 갈던 소들이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짐승들의 경배를 목격한 농부들이 속세를 버리고 그를 따라 입산수도한 데서 '속리'(俗離, 속세를 떠나다)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법주'(法住)는 부처의 가르침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다.
한창때 60여 개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법주사는 호서 지방 제일의 가람이자 미륵신앙의 요람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미륵불이 출현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미륵신앙은 불교의 유토피아 사상이다. 미륵불은 힘들고 괴로울 때 의지하는 희망의 부처이다.
◇ 법주사의 상징…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
진표 율사가 청동과 금으로 7년에 걸쳐 처음 조성했던 금동미륵대불은 조선조 고종 6년(1872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발행했던 당백전 화폐의 주조 재료로 쓰기 위해 몰수당했다.
미륵대불은 1963년 시멘트를 재료로 복원됐으나 붕괴 위기에 처해 해체되고 1990년 청동대불로 다시 조성됐다.
국난 극복, 민족화합, 월드컵 성공개최 및 세계평화의 기원을 담아 2002년 이 청동대불에 개금 불사를 한 것이 현재의 금동 미륵 대불이다.
높이 25m인 이 미륵불은 단일 불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만드는 데 청동 116t이 들어갔다.
팔상전은 한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탑으로 신라 성덕왕(720년) 때 조성된 국보이다.
이 건물은 외부에서 볼 때 5층이지만 실내는 층이 없이 트인 단일 공간이다.
내부 중앙 기둥의 4개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 8폭이 걸려 있다.
세계적인 무술 스타 이소룡은 고색창연한 이 탑에서 영감을 받아 팔상전을 자신의 미완성 영화 '사망유희'의 마지막 결투 장면의 배경으로 삼았다.
법주사 하면 떠오르는 미륵대불과 팔상전 외에도 이곳에는 문화유산이 많다.
신라 시대 쌍사자석등, 탑 형식의 연못인 석연지가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의 3대 국보이다.
쌍사자 석등은 작품성이 뛰어나고 연못을 탑 모양으로 만든 석연지는 착상이 기발하다.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3대 불전으로 꼽히는 대웅보전, 국내 천왕문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천왕문, 높이 120㎝·지름 270㎝의 쇠솥, 고려시대 마애불상, 사천왕석등,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을 올렸다는 희견보살 석상, 동종, 목조관음보살좌상, 원통보전 등은 보물이다.
쌍사자석등, 석연지, 사천왕석등, 희견보살상 등 석조 문화재는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의 탓으로 조각의 세부 묘사가 적잖이 흐려졌지만, 예술적 걸작이 발산하는 미감은 여전히 생생했다.
유물과 유적이 많은 법주사를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자취와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법주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7개 사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금동미륵대불 뒤쪽은 속리산 풍광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수정봉이다.
수정봉에 오르면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부터 신선대를 거쳐 문장대까지 펼쳐지는 유장한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계곡을 낀 넓은 분지에 자리 잡은 법주사 경관도 아찔한 바위 절벽 아래로 펼쳐진다.
미륵대불에서 출발해 30여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수정봉에 닿는다.
'한국 8경' '제2의 금강산'으로 일컬어지는 속리산을 수정봉에서 조망하는 것은 기도, 예불, 명상을 통한 산사체험에 나선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에게 탄성을 자아냈다.
◇ 번민 많았던 세조를 치유하던 길…세조길
법주사는 고려와 조선의 왕들과 인연이 깊었다.
그중 고려 공민왕은 1362년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으로 환도하던 중 법주사에 들렀다.
그는 양산 통도사에 있던 석가모니 진신사리 중 1과를 법주사로 옮겨오게 했다. 능인전 뒤에 적멸보궁이 생긴 연유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는 재위 10년째인 1464년 2월 27일에서 28일 법주사와 복천암을 방문했다.
현재 법주사 말사인 복천암에 있던 스승 신미 대사를 만나 불법에 귀 기울이고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세조가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밑을 지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늘어진 가지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고 말하자 가지가 저절로 번쩍 들어 올려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다. 수령 600여 년인 정이품송은 강풍에 가지 일부가 부러졌으나 지금도 여전히 수세가 강하고 우산을 펼쳐놓은 듯 멋지다.
법주사에서 복천암으로 이어지는 계곡에는 '목욕소'가 있다.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곳이다.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어린 조카 단종을 제거했던 세조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걸었던 길이 지금 '세조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로 조성돼 있다.
세조 길은 법주사에서부터 복천암까지 편도 약 3.2㎞로,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찰 탐방로이다. 맑고 큰 저수지와 계곡 옆을 걷는 재미가 다채롭다.
평일인데도 세조 길을 걷는 방문객은 적지 않았다. 세조가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거닐던 길은 현대인의 힐링 길로 다시 태어났다.
◇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문장대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천왕봉(1,058m)보다 더 유명한 봉우리가 문장대(1,054m)이다.
형제처럼 키가 비슷한 두 봉우리는 신선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문장대를 가장 많이 오르지만, 문장대에서 신선대를 거쳐 천왕봉까지 산행하거나 반대로 천왕봉에서 문장대까지 능선을 타는 등산객이 적지 않다.
문장대와 천왕봉 사이에는 꽃봉오리처럼 운치 있는 기암괴석이 즐비해 '바위들의 천국' '화산'(花山) 등으로 일컬어진다.
세조길 중간에 있는 세심정에서 문장대와 천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갈라진다.
지난해 겨울 내린 폭설로 길이 끊겨 문장대∼신선대 구간은 통행이 금지돼 있었다.
능선 종주를 계획하고 왔다가 돌아서는 등산객들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문장대는 법주사, 상주시 화북면 등이 들머리이다.
법주사에서 출발하면 문장대까지 편도 약 7㎞이며,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산길은 잘 정비돼 있어 안전한 느낌을 주었고 오르막도 겁먹을 만큼 경사가 가파르지는 않았다.
뜨거운 해를 가려줄 만큼 그늘이 짙었지만, 더운 계절에는 아침 일찍 다녀오는 것이 쾌적한 산행의 열쇠였다.
문장대 정상에는 30∼40명이 앉을 수 있는 넓고 큰 바위가 버티고 있다.
정상에서 펼쳐지는 절경은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역동적이었다. 칠형제봉(800∼1,000m), 문수봉(1,037m), 신선대(1,025m), 입석대(970m), 비로봉(1,032m), 천왕봉이 연이어 늘어선 장관을 문장대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이 선경 때문인지 문장대에 3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속설이 내려온다.
문장대는 치솟은 바위 봉우리가 구름과 맞닿는다는 의미의 '운장대'로 불렸다.
세조가 속리산에 행차했을 때 이곳에 올라 신하들과 함께 강론하고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문장대는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의 경계이다. 양측에서 세운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설악산, 월출산 등과 함께 대표적인 바위산인 속리산은 백두대간에서도 소백산맥의 중간에 위치해 남한의 3대 젖줄인 낙동강, 한강, 금강의 분수령이 된다.
천왕봉에 떨어지는 빗물은 동쪽으로 낙동강, 북쪽으로 한강, 남쪽으로 금강으로 흘러든다. 이를 삼파수라 일컫는다.
두둥 두둥∼. 작은 북소리 같은 부엉이 울음에 '뻐꾹뻐꾹' 하는 뻐꾸기 소리가 화답한다.
휘이∼ 휘이이. 앙증맞은 휘파람새의 노래가 이어지고 무어라 글로 옮길 수 없이 영롱한 직박구리 지저귐과 '구구 구구' 하는 멧비둘기 울음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일어나는 듯하다.
초여름이 새들의 산란기인지 법주사, 세조길, 문장대로 이어지는 산길은 수많은 새의 어여쁜 속삭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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