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 출신 두 항일운동가의 인연…후손들이 이어가

김근주 / 2021-03-01 0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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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빈·서진문 선생 후손들 행사 때마다 만나
▲ 항일운동가 후손인 성낙진(왼쪽)·천영배 씨 [울산 동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성세빈(왼쪽) 선생과 서진문 선생 1922년 찍은 사진으로 추정. [울산 동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 동구 출신 두 항일운동가의 인연…후손들이 이어가

성세빈·서진문 선생 후손들 행사 때마다 만나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함께 헌신한 울산 동구 출신 항일운동가 두 명의 후손들이 행사 때마다 만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1일 울산 동구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일산동에서 열린 보성학교 전시관 개관식에 독립운동가 서진문(1900∼1928) 선생의 외손자 천영배(74) 씨와 항일운동가 성세빈(1893∼1938) 선생의 손자 성낙진(71) 씨가 함께 참석했다.

두 후손은 2018년 11월 동구 화정동 서진문 묘역에서 열린 서진문 선생 서거 90주기 추모식, 2019년 8월 서진문 선생 흉상 제막식, 광복절 기념행사 등에도 함께 모습을 보이며 선조의 애국정신을 알려왔다.

두 후손에 앞서 서진문 선생과 성세빈 선생 인연이 깊다.

두 선생 모두 동구 일산동에서 태어난 사촌지간으로 성세빈 선생은 외사촌 동생인 서진문 선생을 무척 아꼈다고 한다.

서진문 선생은 1924년 성세빈 선생이 운영하는 보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알렸다.

서 선생은 유학했던 일본으로 1926년 다시 건너가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1928년 체포됐다.

고문을 받다가 석방됐으나 그다음 날 순국했다.

서 선생 유해는 1929년 1월 동구 일산동으로 운구돼 면민장으로 거행됐는데, 성세빈 선생이 운구를 직접 옮기고 비문을 썼다.

성 선생은 서 선생이 유학할 당시 일본을 방문해 만나기도 했다.

두루마기 차림의 성 선생과 교복을 입은 서 선생이 서로 손을 잡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아직 남아있다.

보성학교 설립자인 성 선생은 일제 탄압으로 1929년 보성학교 교장에서 물러났으나, 보성학교는 1945년 폐교될 때까지 24년간 21회에 걸쳐 졸업생 499명을 배출해 교육과 독립운동 함양 역할을 했다.

성 선생은 청년운동과 학생 계몽운동을 펼치다가 1938년 46세로 사망했다.

동구는 보성학교 전시관을 현충 시설로 지정해 달라고 국가보훈처에 신청한 상태다.

동구 관계자는 "선대 인연이 후대에도 이어져 귀감이 되고 있다"며 "지역 학생과 주민에게 나라 사랑 정신이 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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