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로 그린 시집 '밤의 가스파르'…베아트리체 라나 리사이틀

임순현 / 2024-10-29 1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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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곡에 피아노와 '혼연일체' 연주…흐트러짐 없는 153번의 종소리
▲ 관객에게 인사하는 베아트리체 라나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가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마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10.28 hyun@yna.co.kr

▲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 [마스트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앙코르 연주를 준비하는 라나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가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마친 뒤 앙코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2024.10.28 hyun@yna.co.kr

피아노로 그린 시집 '밤의 가스파르'…베아트리체 라나 리사이틀

고난도 곡에 피아노와 '혼연일체' 연주…흐트러짐 없는 153번의 종소리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한 편의 시를 피아노의 음표로 그려낸 무대였다."

'차세대 피아노 여제'로 불리는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31)가 지난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가 라벨의 대표작 '밤의 가스파르'를 연주했다.

이날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음악으로 1부 공연을 마친 라나는 20분간 휴식한 뒤 사뭇 진지해진 모습으로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2부에서 연주할 '밤의 가스파르'는 현대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꼽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작가 알루아시위스 베르트랑의 동명 시집을 바탕으로 작곡된 작품으로, '물의 요정'(Ondine)과 '교수대'(Le Gibet), '스카르보'(Scarbo) 세 곡으로 짜여있다.

박수와 함께 2부 무대에 오른 라나는 피아노 의자에 털썩 앉더니 첫 번째 곡 '물의 요정'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올림표(#)를 7개나 붙인 올림다장조의 곡답게 몽환적이고 오묘한 피아노 선율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풍처럼 건반을 휘몰아치며 아름다우면서도 위험한 존재인 물의 요정을 피아노로 표현해냈다.

하이라이트인 '교수대' 연주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처형을 알리는 153번의 종소리를 반복해 연주하면서 동시에 교수대에 매달린 시체의 흔들림까지 표현해야 하는 고난도의 곡이었다. 거장 피아니스트들도 한 번 손이 꼬이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로운 곡이지만 라나는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 종소리까지 완벽하게 구현해내며 연주를 마쳤다.

세 번째 곡 '스카르보'의 연주가 시작되자 라나의 표정이 급변했다. 라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피아노와 거의 한 몸이 된 듯 연주했다. 꼿꼿했던 허리를 굽혀 머리가 건반에 닿을 것 같은 자세로 연주를 이어갔다. 연주에 완벽히 몰입한 라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면서 섬찟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이날 공연에서 라나는 '밤의 가스파르'를 포함해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의 곡들로 무대를 채웠다. 멘델스존의 음악 철학이 집대성된 '무언가'를 시작으로,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브람스의 첫 피아노곡인 '피아노 소나타 2번', 라벨이 14년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작곡한 '라 발스'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들을 수 없는 곡들이었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꽤 강도 높은 공연이었다.

라나도 이를 의식한 듯 앙코르 무대에선 춤곡인 브람스의 '왈츠 15번'과 멘델스존의 '물레의 노래'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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