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가 된 철부지 중년 아들이 상갓집에서 보낸 3일

오보람 / 2022-04-20 11: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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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주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봄날'…상갓집 풍경 사실적으로 그려
▲ 영화 '봄날' 속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봄날' 속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봄날' 속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봄날' 속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봄날' 속 한 장면 [콘텐츠판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상주'가 된 철부지 중년 아들이 상갓집에서 보낸 3일

손현주 3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 '봄날'…상갓집 풍경 사실적으로 그려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상갓집을 통째로 옮겨놓기라도 한 것일까. 이돈구 감독이 연출한 영화 '봄날'의 상갓집 풍경은 묘하게 기시감이 든다.

상주들은 고인의 죽음을 잠시 슬퍼하다가도 물밀듯 쏟아지는 손님을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면면을 살펴보니 낯선 사람이 태반이다. 조문객들이 절을 하는 동안 입으로는 연신 "아이고, 아이고" 곡하지만, 머리로는 이들이 풍기는 발 냄새에 짜증이 솟구친다.

손님들이 빠져나간 뒤에는 누가 얼마나 부의금을 냈는지 확인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3만원, 5만원, 10만원, 20만원…. 꼼꼼히 이름과 액수를 받아적다가 "내가 이놈 상당했을 때 얼마를 냈는데!" 하며 '5만원짜리 손님'에게 욕을 한다.

등장인물 역시 아무 장례식장에 들어가 문을 열면 실제로 있을 법한 사람들이다. 상주인 큰아들 호성(손현주 분)은 어느 집안에나 하나씩은 있는 골칫거리다. 한때 조직에 몸담았던 그는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대접받기 위해 상주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그의 동생 종성(박혁권)은 공인중개사로 일하며 착실하게 살아가지만,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 타박을 듣는 신세다. 어머니(손숙)는 늘 장남 걱정뿐이다. 행여 다시 깡패질을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호성의 딸 은옥(박소진)은 예비 신랑에게 아버지를 보여주기 창피하고, 아들 동혁(정지환)은 아버지가 애처로우면서도 밉다. 호성의 오랜 친구 양희(정석용)는 장례 기간 내내 취해서 말썽을 피운다.

영화는 부친상을 당한 철부지 중년 남성 호성이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의 일을 그렸다. 호성은 아버지 염을 할 때부터 깐깐한 장례 절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생의 구박에도 자신은 아버지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컸다고 항변한다. 그의 관심사는 다시 조직에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옛 후배가 그의 요청을 거절하자, 호성은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 깡패들에게 카드 게임비를 빌려주고 한 몫을 챙기는 '사업'을 시작한다.

상갓집은 순식간에 도박장으로 변한다. 술에 취한 양희가 깡패 중 한 명에게 시비를 거는 바람에 패싸움까지 난다. 게임비와 이자를 돌려받지 못한 호성은 기름을 한 통 받아다가 깡패들이 잡혀 있는 파출소에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아버지를 땅에 묻는 순간까지도 호성은 철부지 아들이다.

리얼한 캐릭터와 스토리는 실제 상갓집에서 일어난 일을 체험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충남 예산의 작은 장례식장으로 공간이 한정적이지만, 덕분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상황을 관찰할 수 있다. 관객은 과거 상갓집에서의 경험이 떠오르며 웃음이 새어 나올 듯하다. 충청도식 유머와 차진 욕, 사투리가 재미를 더한다.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손현주는 오랜만에 힘을 뺀 연기로 소소한 웃음과 감동을 준다. 한심하게만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에 연민이 느껴지는 건 손현주 호연의 힘이 크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은 그가 숨죽여 흐느끼는 장면은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하는 건 호성의 친구 양희 역을 소화한 정석용이다. 정말로 술에 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취한, 그리고 조금 모자란 친구 같은 연기를 펼친다.

27일 개봉. 상영시간 102분. 15세 관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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