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할 때만 평등한, 기울어진 현실…영화 '평평남녀'

한미희 / 2022-04-21 11: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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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평평남녀' [씨네소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평평남녀' [씨네소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씨네소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필요할 때만 평등한, 기울어진 현실…영화 '평평남녀'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한 디자인 회사의 '해결사'로 불리는 영진(이태경 분)은 '만년 대리' 신세다.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를 해결하는 능력자지만,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대리다. 과장 승진은 결혼해 아이 낳을 일이 없는 남자들 차지였다.

비어 있는 과장 자리를 불쑥 차지하고 들어온 준설(이한주)은 첫인사에서 "낙하산이 맞다"고 뻔뻔하게 인정한다. '팀을 키워보겠다'고 야심차게 말하지만 정작 업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능력도 없다.

준설이 얼토당토않은 포부를 과장되게 말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본 영진은 군말 없이 준설이 요구하는 대로 회사의 역사와 비전에 대한 자료를 가져다주고, 책상 청소도 해준다.

영진은 '명색이 과장인데 공부 좀 하라'는 뼈있는 충고를 잊지 않고, 다른 팀원들도 영진이 계속 업무 책임을 맡아야 한다며 준설을 무시한다.

어쩌다 둘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취한 영진은 "네가 내 자리를 빼앗았다"고 일갈하기도 하지만, "인생이 낙하산이었고 그래서 늘 왕따였다"였다는 준설의 고백에 마음이 약해져 버린다.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영진은 순식간에 준설에게 마음을 내주고 비밀 사내 연애를 시작한다. 마냥 좋기만 하던 시간이 지나고, 준설이 영진의 디자인을 도용해 자신의 실적으로 만들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영화 '평평남녀'는 평범한 30대 여성이 겪는 직장 생활과 연애 감정을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가벼운 터치로 담아냈다. 많은 여성 직장인들이 무릎을 치며 같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깔깔거리며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영진은 일에 치여 사느라 자신을 꾸미는 일도, 집 안 청소도 제대로 못 하고 퇴근 후 술로 지친 마음을 달래지만, 회사의 남자 상사는 물론 까마득한 남자 후배까지 충고랍시고 성희롱에 해당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영진의 아이디어를 무시했던 부장은 준설이 가져온 디자인이 영진의 것임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결국 중국 진출까지 성공하는 걸 지켜본 영진은 "집어치우면 애매하던 인생이 그냥 망하는 것"이라며 자조한다.

영진은 '준설의 열등감을 알아서 미워하기 힘들다'며 눈물을 쏟기도 하지만, 회사에서 준설과 육탄전을 벌인다. 이 일로 영진의 책상은 직원 휴게실로 옮겨진다.

일과 연애에 지친 영진이 육아에 지친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은 꿈인 듯 판타지인 듯 펼쳐지지만, 짧은 여행 끝에 돌아온 현실은 그대로다.

영진의 직장 생활은 마치 노동청에 고발된 사례를 망라한 듯 파란만장한 데 비해 결말은 다소 맥이 빠진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겠다는 영진의 새로운 시작에 희망을 담긴 했지만 영화 제목대로 영진과 준설의 관계가 과연 평평해졌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김수정 감독은 시사회 이후 열린 간담회에서 친구의 직장 생활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직장 안에서 여성 동료를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대하면서도 일에 있어서는 뒤처지는 걸 격렬하게 싫어했다는 남성의 심리가 흥미로웠다"며 "이기고 지는 관계가 아니라 조금씩 평평해지는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고 했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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