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 작가 "페이지에 구멍 내서 그리운 마음 연결했죠"

안정훈 / 2022-06-05 12: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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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번역도 한 신작 '우리 다시 언젠가 꼭' 출간
"일상의 소중함 담은 책"…"그림책 제작에 관한 글 쓰고 싶어"
▲ 이수지 작가[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신간 '우리 다시 언젠가 꼭' 중 발췌 [비룡소 제공. 재배포 DB금지]

▲ 신간 '우리 다시 언젠가 꼭' 중 발췌 [비룡소 제공. 재배포 DB금지]


이수지 작가 "페이지에 구멍 내서 그리운 마음 연결했죠"

그림 그리고 번역도 한 신작 '우리 다시 언젠가 꼭' 출간

"일상의 소중함 담은 책"…"그림책 제작에 관한 글 쓰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안정훈 기자 = 그림책 표지부터 페이지 곳곳에 아기자기한 구멍이 뚫려 있다. 책 속의 아이는 뻥 뚫린 컴퓨터 모니터 구멍으로 할머니 모습을 보고, 페이지를 넘기자 할머니도 모니터에 난 열린 공간을 통해 훌쩍 자란 손주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모니터, 작은 창문, 편지 봉투 등 포인트가 되는 그림에 뚫은 '다이 컷'을 통해 앞장 그림이 뒷장 그림의 일부가 되며 흥미롭게 연결된다.

지난 4월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림책 작가 이수지(48)의 신작 '우리 다시 언젠가 꼭'(비룡소)이 출간됐다. 다이 컷 기법의 책은 기존에도 있지만 스토리에서 떠올린 이 작가만의 창의적인 발상을 녹여내 새로운 형태로 구현했다.

이수지 작가는 5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중간에 여러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종이가 그 둘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서로가 페이지에 난 구멍을 통해 내다보면서 마음을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다시 언젠가 꼭'은 이 작가가 안데르센상 수상 이후 처음 낸 작품으로, 멀리 떨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와 손주에 대한 이야기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팻 지틀로 밀러가 글을 짓고, 이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번역도 했다.

이야기 속 손주는 당장 만날 수 없는 할머니에게 아이다운 상상력으로 다양한 소통을 시도한다. 로켓과 추진기를 이용해 날아가는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고, 모니터 화면으로 만나는 계획을 세운다. 그래도 직접 만나러 갈 방법을 찾고 싶다며 '작은 당나귀라도 구할 거예요'라고 천진하게 말하는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페이지에 뚫린 구멍은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를 확 좁히면서 그리움, 희망 등 서로의 감정을 전하는 '창' 역할을 한다. 편지 봉투에 난 구멍에는 손주의 얼굴이 담기고, 과감하게 뚫린 3개의 구멍으로는 손주와 할머니의 집 안 풍경도 보인다. 책 한가운데 제본선을 가로질러 그림을 시원하게 펼치고, 페이지 일부를 잘라 내 뒷장의 그림과 연결하기도 했다. 색상의 보색 배합과 수채·연필·목탄 등을 이용한 그림체로 감정 표현에 힘을 실었다.

이 작가는 "원고를 받고 두 사람의 그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다가 책의 물리적 속성인 '페이지'를 입체적으로 활용해보고 싶어졌다"며 "책을 촘촘하게 구성하고 내용에 맞게 연결하는 데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신과 외할머니의 유대관계가 작품 제작에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그림책 맨 뒷면에는 이 작가가 네 살 때 외할머니와 찍은 사진과 밀러 작가가 유년기에 조부모, 남매들과 찍은 사진을 넣었다.

이 작가는 "외할머니는 단순히 손주가 예뻐서가 아니라 정말 친구처럼 놀아주셨다"며 "연로해지셔서 자주 뵙지 못하는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작품 제작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리워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는 모습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작가도 주말마다 지방에 사는 부모님을 찾아가다가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에게 마스크를 씌울까도 고민했다"며 "팬데믹을 거치면서 보고 싶은 사람을 바로 연락해서 볼 수 있고, 안고 싶으면 안을 수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책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린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책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로 표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2002년 출간한 데뷔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이른바 경계 3부작인 '거울 속으로', '그림자놀이', '파도야 놀자'와 최근작 '여름이 온다'까지 책의 물성(物性)과 결합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다.

지그재그로 접힌 책이 아코디언처럼 펼쳐지고, 책의 제본선이 현실과 환상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가 되기도 했다.

이 작가는 하고 싶은 게 여전히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며 웃었다.

그는 "글을 써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림책을 만드는 전반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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