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서울 개인전 개막…4월 베네치아서 회고전
![]() |
| ▲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하종현 개인전에서 관계자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전시는 3월 13일까지 열린다. 2022.2.15 |
![]() |
| ▲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하종현 화백이 전시 간담회를 하고 있다. |
![]() |
| ▲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하종현 개인전에서 관계자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2.2.15 |
단색화 거장 하종현 "난 늘 새로운 곳으로 가는 작가"
"평생 변화한 것 자랑스러워…소원은 미술관 만드는 것"
국제갤러리 서울 개인전 개막…4월 베네치아서 회고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선구자'라는 노래를 좋아해요. 나는 늘 앞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평생 새로운 것에 도전했어요."
하종현(87) 화백은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꼽히는 단색화의 선구자이다. 젊은 시절부터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변화를 거듭해온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방가르드'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캔버스 대신 올이 굵은 마포(麻布)를 쓴다. 천 위에 물감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앞면으로 밀어내는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일궈냈다.
일산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평생 마대와 씨름했고, 마대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것은 변치 않았다"며 "그러나 그 대전제 안에서는 무엇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작업해왔다"고 말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개인전은 진화해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 돈 없어 캔버스 대신 쓴 마대로 거장 반열에
지금은 마포가 하종현의 상징이 됐지만, 그 시작에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아픈 과거가 있다.
하종현 화백은 "캔버스 살 돈이 없어 원조 식량을 담았던 마대에 그리기 시작했다"며 "그때가 1960년대니 일생을 마대와 싸운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대는 억세고 올이 굵어 위에 그리기가 어려웠다"며 "그런 마대를 이겨내기 위해 물감을 뒤에서 밀어냈고, 일생을 연구하며 그 작업을 해왔다"고 돌아봤다.
하종현은 1970년대 마포를 활용한 '접합'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접합'이라는 제목에 대해 작가는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것, 물질과 물질의 만남으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접합"이라며 "재료와 행위의 접합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2015년 이후 서울에서 대규모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한국적인 무채색을 사용한 기존 '접합' 연작부터 현대적인 색감이 눈에 띄는 다채색 '접합', 나란히 배열한 나무 막대 사이에 물감을 짜고 밀어낸 '이후 접합'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다.
그는 "내 작품을 보면 시대마다 달라진다.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 싫었다"며 "조금 팔릴 만하면 잘 팔리지 않는 작업을 시작해 배도 많이 곯았지만,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단색화 거장으로 불리지만, 그는 자신을 그 굴레에 가둬둘 생각이 없다. 2010년대부터는 화면에 풍부한 색을 입히며 단색화라는 틀을 넘고 있다.
그는 "단색화가로 불리지만 나는 그 안에 편안하게 있기를 원치 않는다"며 "잠깐 그곳에 여행객으로 머물렀지만 나는 거기서 나가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유파에 스스로 가두지 않는다. 정해 놓으면 내가 갇히는 것이니 언제나 열어놓고 변하려 한다"며 "그러다 보면 자갈밭도 지나고 폭포 밑도 지나게 되지만, 그 변화의 길을 걸어온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작가는 작업실 지켜야…작업할 때 가장 행복"
하종현 화백은 홍익대 미대 교수로 학장까지 지낸 교육자이자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일한 미술행정가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도 역임했다. 미술계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그는 천생 작가였다.
그는 "이제 나이가 많아 여기저기가 고장나 속도는 느려졌지만 그래도 계속 작업한다. 작업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전사가 전장을 지키듯이, 작가는 마지막까지 작업실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께 일산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집 옆에 창고처럼 보이는 가건물 4동을 짓고 작업실과 전시실, 수장고로 사용 중이다. 초기작부터 현재 작업 중인 작품, 마포까지 작가의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해외에서도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바라보며 작가는 "평생 새로운 것을 해왔지만 이제 매듭을 짓고 정리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도 한다"며 "소원은 이 땅에라도 조그마한 내 미술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작품이 잘 팔렸으면 했는데 이제는 작품이 흩어질까 봐 겁난다"며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내가 남긴 흔적, 땀 흘려 그린 작품을 한데 모아놓고 보여줄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캔버스 살 돈이 없어 시작한 마대와의 '접합'을 수십년 계속한 끝에 세계적인 거장이 된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있다.
오는 4월 베네치아비엔날레 기간에는 현지에서 회고전이 개최된다. 올해 9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블럼&포갤러리, 내년에는 파리 알민 레쉬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다음 달 13일까지.
(끝)
(C)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