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랑군 설치, 신라·발해·일본 국가체제 성립 계기 됐다"
이성시 교수 논문집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 고대사 연구자인 이성시(李成市) 와세다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폭넓게 활동하는 재일교포다. 일본에서는 조선사연구회장, 한국에서는 목간학회장을 지냈다.
그는 국내에도 번역된 역사서 '만들어진 고대'와 '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에서 고대사를 근대 국민국가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자고 일관되게 강조했다.
예컨대 광개토왕비나 칠지도를 두고 한일 역사학계가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는데, 양국 견해를 비교하면 자국 중심적 역사 해석이 개입된 사례가 적지 않다. 이처럼 국민국가 틀로 고대사를 탐구하면 오히려 중요한 사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 생각이다.
특정 국가만 들여다보는 일국사(一國史) 관점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역사를 폭넓게 이해하자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오늘날 역사는 정치나 국제관계와 밀접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삼인이 펴낸 신간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는 이 교수가 1979∼1997년에 발표한 논문을 모은 책이다. 수십 년 전 글에서도 그는 고대사와 국민국가 사이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서론에서 국민국가의 '민족', '국가'관을 상대화하고 극복해 역사적 과정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당시의 시선으로 살피자고 제안한다.
그가 특히 주목한 대상은 한나라 무제가 기원전 108년 동쪽 땅에 설치한 낙랑군이다. 약 420년간 지속된 낙랑군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학계는 보고 있다.
저자는 "낙랑군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한반도에 걸쳐 여러 민족을 억압하고 독자적 발전을 저해한 존재일 수 있다"면서도 "동아시아 여러 민족은 낙랑군을 통해 압도적 격차가 있는 고도의 중국 문명과 적극적으로 접촉해 이를 수용했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7∼8세기 신라, 발해, 일본이 한자와 유교를 비롯해 불교, 율령(律令)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체제를 확립하는 데 낙랑군 설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 저자 판단이다.
그는 낙랑군을 매개체로 하는 중국 문명의 전파와 교류를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의 독자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동이(東夷) 여러 종족은 중국 문명을 각자의 조건에 맞춰 수용했고, 또 여러 국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며 독자적 발전을 이뤄냈다"며 "동아시아 외교 교섭 배경에는 한결같이 대륙과 한반도 간의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고 짚는다.
번역은 이병호 공주교대 교수와 김은진 국립중앙박물관 전문경력관이 했다. 역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역사 평론가가 아닌 한국 고대사 연구자라는 저자의 본래 모습이 부각되길 바란다"고 했다.
528쪽. 3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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