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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무에 싸인 예수상 [사진/성연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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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으로 착각할 만큼 잔잔한 리우의 앞바다 [사진/성연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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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파카바나에서 비치 발리볼을 하는 젊은이들 [사진/성연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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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빵산 [사진/성연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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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라론의 계단 [사진/성연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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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미 돋보이는 리우데자네이루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성연재 기자] |
[imazine story] 세상 끝에서 만난 브라질 ① 리우데자네이루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브라질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많다. 삼바의 박동, 리우데자네이루 도시 위의 미소를 머금고 선 예수상, 빵산의 우뚝한 곡선, 이구아수 폭포의 굉음은 지구 반대편의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그 경이로움을 접할수록, 화려한 풍경의 이면에 제국주의가 남긴 폭력의 흔적이 켜켜이 겹쳐 있음을 외면하기 어렵다.
◇ 1월의 강 그리고 예수상
브라질 여정은 리우데자네이루(리우)에서 출발한다. 리우의 이야기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1502년 1월, 포르투갈 항해자들은 좁은 물길로 이어진 거대한 만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를 강이라 믿었고, 달력에 적힌 달을 그대로 이름으로 붙였다. 리우데자네이루는 '1월의 강'이란 뜻이다.
이를 시작으로 유럽 열강에 의한 침탈의 역사가 시작됐다. 1555년에는 프랑스 개척자들이 상륙해 거주지를 만들었고, 이후 포르투갈과의 쟁탈전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부족들은 프랑스와 포르투갈 편으로 각각 나뉘어 살육전의 앞잡이가 됐다. 결국 1567년 포르투갈이 승리를 거두며 이 땅은 포르투갈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코르도바의 예수상은 그런 잔인한 역사와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예수상을 방문하면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왜 이곳을 강으로 착각하게 됐는지 알 수 있다.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닌 것 같은 독특하고 복잡한 해안선들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예수상 방문 당시에는 안개가 자욱해 전망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치 그리스도의 축복이라도 내린 듯, 일행이 도착한 직후부터 운무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빵산을 비롯한 리우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이 조각상은 높이 39.6m, 무게 700t에 달하며, 예수 조각상 중 세계 최대 규모다. 한때 정상까지 오르는 트램이 관광객들의 주요 이동 수단이었으나, 몇 년 전부터 이 트램은 운영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전용 차량이나 셔틀버스를 이용해 예수상을 찾을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리우데자네이루 전경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빽빽한 숲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모습은 여행길의 수고를 단번에 잊게 할 만큼 강렬하다.
◇ 베리 매닐로우의 코파카바나
브라질 여행 전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음악이 하나 있다. 베리 매닐로우의 '코파카바나'다. 감미로운 목소리 뒤로 들리는 긴박한 비명은 이 해변이 단순한 휴양지가 아님을 암시했다. 신명 나는 음률로 시작된 코파카바나의 가사는 실제로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쇼걸인 로라와 바텐더 토니의 사랑이 폭력배인 리코가 쏜 총에 토니가 목숨을 잃으면서 풍비박산 난다는 내용이다. 코파카바나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졌다.
'정열의 해변'이라는 표현은 이곳을 두고 생겨난 말일 것이다. 바다와 도시가 곡선처럼 이어지고, 고층 건물들이 뾰족한 연필처럼 솟아 있으며, 곳곳에서 보사노바 리듬이 해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내 발에 닿은 모래는 차가웠다. 며칠째 리우를 덮은 폭우 탓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런데도 이 도시는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비키니 차림으로 비치발리볼하는 여인들, 상의를 벗고 조깅하는 근육질의 젊은이들, 파도를 쫓는 아이들… 나쁜 날씨에도 이들의 정열은 식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와는 대비되듯, 밤새 번쩍이던 경광등은 이곳이 관광지이자 동시에 범죄의 현장임을 잊지 않게 했다.
이튿날, 안전을 위해 한국인 가이드가 이끄는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가이드 비용만 1인당 15만원이며, 입장료 등은 별도라고 했다. 다소 부담스럽지만, 걸핏하면 터지는 강도 사건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필자가 리우를 방문하고 며칠 뒤 리우 주정부가 2천500여명의 경찰 병력과 장갑차 32대, 헬기 등을 동원해 갱단에 대한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펼쳐 120여명을 사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접한 뒤 가이드 투어를 한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빵산, 리우의 또 다른 얼굴
리우의 상징이 예수상이라면, '빵산'(Pao de Acucar)은 그 도시를 조용히 내려다보는 산이다. 잘 보면 유럽인들이 먹는 빵과 같은 모습을 해 이런 이름을 얻었지만, 실상은 해발 396m의 거대한 화강암이다. 그 위에 올라서야 진짜 리우를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케이블카에 올라야 한다. 케이블카 탑승료는 당일 투어 비용에서 제외된 가격이라 꽤 부담스러웠다. 첫 번째 케이블카는 212m 높이의 우르카 언덕으로 향한다. 좌석 없이 서서 타야 하지만, 열린 창으로 밀려드는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해안선과 리우 시내의 전경은 불편함을 잊게 한다.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예수상이 보이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들과 고급 주택가의 풍경이 느껴진다.
두 번째 케이블카를 타고 빵산 정상으로 올라가자 날은 이미 어둑해졌다.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오히려 어둠이 준 풍경이 더 깊은 인상을 준다. 길게 이어지는 바닷가의 가로등, 어슴푸레한 수면 위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 리우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조명처럼 빛나는 모습이었다.
정상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들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잔에서 피어오르는 향과 함께, 바다와 도시,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리우의 기운을 한눈에 품을 수 있었다.
◇ 셀라론의 계단과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칠레 출신 예술가 호르헤 셀라론이 1990년부터 사망한 2013년까지 만든 예술 계단. 길이 125m, 215개의 계단, 2천여 장의 세라믹 타일로 구성돼 있다. 파랑·초록·노랑 타일이 브라질 국기를 연상시킨다. 이 계단은 그의 사후 다양한 미디어에 소개되며 리우의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인 가이드는 셀라론이 갱단과 연관된 위협을 받았다는 뒷얘기와 함께 경찰이 그의 사망 원인을 두고 다방면으로 수사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리우 중심가에 우뚝 선 피라미드 모습의 건물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곳은 리우데자네이루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다. 이 건물은 기존의 성당 건물이 주는 이미지와는 꽤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성상도, 첨탑도 없으며, 얼핏 보면 피라미드 같은 느낌을 준다. 지름 106m, 높이 68m, 수용 인원 2만5천 명이나 되는 이 건축물은 실제로 건축가 에드가 폰세카가 마야제국의 피라미드에서 영감을 받아 세운 작품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풍경은 돌연 고요해진다. 거친 콘크리트 외벽과 달리, 안쪽은 사방에서 솟구치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빛과 침묵으로 공간을 감싸 안는다.
1976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단순히 예배당에 머무르지 않는다. 코르코바도의 예수상, 셀라론 계단, 코파카바나 해변과 함께 리우의 4대 명소로 꼽힌다. 신앙과 예술, 건축적 오브제가 공존하는 장소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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