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차 배송·뚜벅이 배달·대리운전…플랫폼 노동자가 된 가족

이은정 / 2022-03-18 17: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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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장편 소설 '헬프 미 시스터'


자차 배송·뚜벅이 배달·대리운전…플랫폼 노동자가 된 가족

이서수 장편 소설 '헬프 미 시스터'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이젠 때가 되었다. 그들 모두 정신을 차릴 때가. 네 명의 성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단 한 명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다니…"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수경이 약물 성범죄에 당할 뻔한 뒤 회사를 그만두자 식구 중 돈 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게 된다.

15평짜리 낡은 빌라에 사는 이 가족은 수경과 우재 부부, 수경의 부모인 천식과 여숙 등 성인만 4명. 이들과 함께 우재의 조카인 17살 준후와 10살 지후가 산다.

우재는 손실이 큰 전업투자자로 사실상 백수이고, 과거 사기를 당했던 아버지 천식은 이제 연로하다. 그래도 엄마 여숙이 갖가지 일로 생활비를 보탰지만 아픔을 겪은 딸을 돌보려고 일을 중단했다.

생계가 위태로워지자 성범죄 공포와 후유증으로 밖에 나가지 못했던 수경은 책임감에 마음을 다잡고 선언한다.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일자리 구하기가 여의치 않은 이들 가족이 택한 건 플랫폼 노동이다. 수경과 여숙은 자차 배송과 여성을 위한 심부름 대행 앱 '헬프 미 시스터' 일을, 천식은 뚜벅이 음식 배달을, 우재는 배송과 대리운전을 한다.

이서수(39) 작가가 펴낸 두 번째 장편 소설 '헬프 미 시스터'는 팍팍한 현실을 딛고 살아내려는 가족의 연대를 그려낸다. 그 안에는 시간에 쫓기고 스트레스에 내몰리는 플랫폼 노동자의 현실·제도적 취약점, 21세기 여성 노동의 현실까지 저릿하게 꿈틀댄다.

비정규직, 여성 등 사각지대의 불안한 존재를 풀어내는 서사는 유쾌하면서도 적나라하다.

책 제목이자 여성의 불안 해소를 위해 만들어진 심부름 앱 '헬프 미 시스터'는 여성의 현실과 연대를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이 앱은 의뢰인도, 구직자도 모두 여성인 공간. 별의별 게 다 있다는 천식의 말에 여숙은 말한다. "그런 게 필요한 세상이겠지."

2014년 등단한 이서수 작가는 장편 '당신의 4분 33초'로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단편 '미조의 시대'로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평론가 안서현은 "지금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것, 다양한 세대가 모인 대가족의 올망졸망한 욕망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 바로 이서수의 장기"라고 평했다.

은행나무. 344쪽. 1만5천 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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