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재의 새록새록] 콘크리트 벽이 된 남대천…물수리, 사냥터를 잃다
유형재
2026-11-09 06:30:01
(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매년 가을이면 강원 강릉시 남대천 하구에서는 최고의 볼거리가 연출됐다.
하늘을 날던 물수리(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가 순식간에 수면으로 급강하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팔뚝만 한 물고기를 낚아채는 역동적인 모습은 최고의 장관이었다.
사냥의 명수로 불리는 물수리의 이 멋진 순간을 담기 위해 가을마다 전국 각지에서 망원렌즈로 무장한 일명 '대포부대'가 남대천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올해 가을, 남대천에서 펼쳐지던 그 최고의 볼거리는 예전만큼 보기 어려워졌다.
◇ 고층 빌딩에 성벽처럼 둘러싸인 남대천
남대천 하구 주변에는 작년부터 최고 21층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이어 최근에는 16층 높이의 500여 가구 아파트와 7층짜리 공공기관 연수원까지 잇따라 완공됐다.
이 때문에 과거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등 다양한 야생동물 낙원이던 남대천 하구는 이제 '오션뷰'와 '리버뷰'를 내건 고층 건물에 의해 성벽처럼 가로막혔다.
건물이 모두 들어서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게 되거나 아파트 등 건물의 유리창이 햇볕을 반사하면서 물수리의 먹이활동 등에 실제 영향을 줄 우려가 커졌다.
물고기 사냥의 명수 물수리는 탁 트인 시야를 바탕으로 물속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착해 내리꽂히는 맹금류이다.
이 때문에 주변의 고층 건물들은 치명적인 '시각적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주변의 고층 건물이 들어서며 바람길과 풍향이 바뀌고, 많은 유리창이 햇볕을 반사하면서 새들의 먹이활동과 비행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 사냥터의 강제 이동과 과제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올해 물수리는 예전에 주로 사냥하던 '고층 건물 앞 탐조대 부근'에서는 거의 사냥하지 않고 있다.
대신 대형 및 고층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주변 변화가 거의 없는 공항대교 하류 쪽에서 사냥이 목격되고 있다.
이번 가을 남대천을 찾았던 대포부대는 역동적인 사냥 장면은 고사하고 물수리 모습조차 예년만큼 보기 힘들다며 발걸음을 돌려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지역의 한 생태 사진작가는 "수년간 가을마다 남대천을 찾았지만, 올해처럼 물수리 사냥 장면을 보기 힘든 적은 거의 없었다"며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주변 환경 변화가 사냥터 환경을 망가뜨린 것인지 원인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대천 하구와 같은 철새 도래지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건축물 높이 및 이격 거리 제한 등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 겨울이 가까워져 오면 물수리는 떠나고 흰꼬리수리(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천연기념물)를 비롯한 겨울 철새가 남대천을 찾는다.
고층 건물 숲 사이로 여전히 남대천을 찾는 철새들이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자체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생태 랜드마크' 보존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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