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거장' 미타니 고키 "웃음기 뺀 권력·예술의 대립 그려"
권지현
2026-10-30 19:38:05
"내적 자아가 코미디로 이끌어…살아갈 용기 전하려 희극 만든다"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이번 신작은 코미디 장르가 아니에요. 웃음기 없는 형태로 관객에게 진지하게 다가가고자 했죠. 작품을 통해 권력과 예술의 대립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웃음의 대학' 등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 연극의 거장 미타니 고키는 30일 연극 '아메리칸 드림'의 첫 내한 공연을 기념해 한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작품의 주제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쓰고 연출한 신작 '아메리칸 드림'은 이날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된다. 냉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후반 미국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공산주의자를 광적으로 색출하는 이른바 '적색 사냥'을 다뤘다. 사상 검증을 받는 영화인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킬 것인지,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배신할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코미디의 거장으로 알려진 그이지만, 미타니 연출은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코미디가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다. 그는 이날 취재진에게 "(적색 사냥이라는) 소재가 코미디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아메리칸 드림'은 굉장히 현실적인 고민과 괴로움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극뿐 아니라 영화도 만드는 사람으로서 옛 할리우드 영화와 영화인들을 좋아한다는 미타니는 "할리우드의 적색 사냥을 알게 되고 늘 이를 생각하던 중 실력 있는 배우들을 모시게 됐다"며 "이 배우들의 실력을 100% 살릴 수 있는 소재는 무엇일까 하다가 국가 권력과 예술가들의 대립을 다루게 됐다"고 작품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아메리칸 드림'의 일본 초연에는 '국민의 영화' 등 미타니의 작품에 다수 출연한 고히나타 후미요를 필두로 아사노 가즈유키, 야마자키 하지메, 아사노 마사히로, 세키야 하루코, 나카가와 다이시가 합류했다. 이번 한국 무대에도 이들이 출연한다.
미타니는 "작품의 테마는 권력과 예술가의 대립이지만, 주제 자체가 작품의 동기가 되지는 않았다"며 "정치나 사회에 대한 생각을 연극으로 표현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배우들이 나에게 연극을 쓰도록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색 사냥의 타깃이 된 영화인들은 마지막까지 권력과 싸우기도 하고 동료를 밀고하기도 하며 각기 다른 패턴으로 이에 대응하죠. 네 명의 인물이 각기 연기하는 네 가지 방식을 통해 배우들의 장인과도 같은 연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어요."
극 중 인물들은 증언을 거부해 수감됐다 풀려나 가명으로 활동을 이어온 각본가 돌턴 트럼보, 동료를 밀고한 연출가 엘리아 카잔, 망명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을 모델로 했다.
미타니는 "작품 제목 '아메리칸 드림'은 일종의 냉소적 비틀기"라며 "극 중 대사처럼 '악인은 없다. 있는 것은 피해자뿐'이라는 생각으로 적색 사냥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력뿐 아니라 온라인 사회 등도 현대의 큰 권력이다. 지금 일본 사회 또한 자유로운 발언을 하기 힘든 사회"라며 "권력에 어떻게 맞서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예술)을 해 나갈 수 있는지를 조명해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지한 소재를 선택하며 코미디 형식을 버리고자 했지만, 미타니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제 자아가 어쩔 수 없이 점점 웃음을 주는 방향으로 저를 이끌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공연 당시 망명 영화인 '마이스터' 등장 장면에서 굉장히 많은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관객이 너무 웃으셔서 조금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어요.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은데, 진지한 작품에서도 얼마든지 관객을 웃길 수 있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몫 한 것 같습니다."
미타니는 자신이 희극을 쓰는 이유는 "관객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절망하거나 죽고 싶었을 때 저를 구해준 것은 늘 코미디였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날 '미스터 빈'을 보고 웃은 다음, 내 고민이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 알게 됐죠. 그래서 코미디를 합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계속 코미디를 만들어 가고 싶다"며 "특히 내 메시지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연극 무대인데, 눈앞에서 웃는 관객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희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미타니는 끝으로 한국 배우들과 함께하는 희극에도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인 배우와 한국에서 코미디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실력 좋고 연기 잘하고, 성격 좋은 배우가 있으면 언제든 추천해 달라"고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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