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몸의 언어로 관객 설득…"그럼에도 대화는 가능하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독일 신체극 단체인 '김치브로트 커넥션'(KimchiBrot Connection)이 5∼6일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선보인 '(언)리쉬드'((un)leashed)는 공연 시간 65분 내내 '우리는 어떻게 싸우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작품은 싸움의 방식이 얼마나 손쉽게 확대되는지, 싸움의 분노가 왜 '대화의 부재'에서 시작되는지 설득력 있게 다룬다.
서울연극협회가 개최한 '제1회 ST(Seoul Theatre)-노바'의 세 번째 해외 초청작으로 무대에 오른 '(언)리쉬드'는 정적에서 출발한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는 무대에서 출연진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다. 그러나 단 한 걸음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손을 뻗어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말하려 해도 문장은 정확한 형태로 상대에게 도달하지 않는다. 곧이어 신체의 리듬과 타악기의 박자가 겹치면서 관객은 깨닫는다. 이들은 단지 감정이 격해진 사람이 아니라, 소통이 막힌 사람들이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존재하지만, 그 노력은 자꾸만 무대 위에 그어진 하얀 틈으로 새어 나간다.
작품은 싸움의 명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배우들의 '태도'와 '말투'로 싸움의 본질을 치환해 버린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계속 무언가를 따지고, 반박하고, 재확인하려 든다. 하지만 싸움이 무엇 때문에 시작됐는지는 끝내 분명해지지 않는다. 화자가 무엇을 화내는지, 사실관계가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대립은 이어진다. 그 순간 싸움은 생각보다 쉽게 확장된다. 이유가 사소한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오해의 문장과 상처를 주는 단어로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간다.
!['(언)리쉬드' 공연 모습 [서울연극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7/yna1065624916281089_428.jpg)
여기서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선명해진다. 인간은 누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 싫어하고 분노하는 편이 더 쉽다는 사실이다. '(언)리쉬드'는 그 쉽고 빠른 방식이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전체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대가 굴복하지 않으면, 갈등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갈등은 결국 상대를 '증오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도식으로 굳어진다. 증오의 범위는 사회 전체로 확장되고, 대화가 사라지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더 이상 '필요한 작업'이 되지 못한다.
작품은 단지 분노를 비판하는 연극이 아니라, 분노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해부하는 연극이다. 특히 작품은 독일이라는 장소적 맥락을 통해 설득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선전·선동이 보여준 것처럼, 어떤 집단을 향한 증오는 '이해'보다 '낙인'으로 전염되기 쉽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한 번의 논쟁이 또 다른 증오로 이어지는 과정을 낯설지 않게 마주한다. 그리고 그 낯설지 않음이 오히려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신체극 특유의 시적인 몸의 언어는 이 과정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제목 속 '리쉬드'(leashed, 묶인)와 '언리쉬드'(unleashed, 풀려난)의 언어유희처럼, 인간의 감정 또한 언제든 신체에 속박되거나 신체에서 풀려날 수 있다.
다행히 작품의 결말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관객은 균열이 끝내 폭발로만 끝나지 않고, 조금씩 메워질 수 있음을 목격한다. 종국에는 소통과 대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발견되면서 작품이 마무리된다. 폭력과 분노, 증오만이 판치는 시대에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때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울연극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korean-vibe.com/news/data/20261107/yna1065624916281089_461.jpg)
작품을 제작한 김치브로트 커넥션은 우리 음식인 '김치'와 '빵'을 의미하는 독일어 '브로트'(Brot)를 합쳐 만든 극단명이다. 한국계 연출가인 엘리자 호프만이 한국과 독일의 문화를 공통 기반으로 설립한 극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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