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하늘빛으로 그린 수묵화…영화 '자산어보'

한미희 / 2021-03-19 11: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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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신작 흑백영화…설경구 첫 사극 도전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자산어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자산어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물빛·하늘빛으로 그린 수묵화…영화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신작 흑백영화…설경구 첫 사극 도전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스크린에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진다. 남쪽 바다 섬마을의 물빛, 하늘빛, 땅빛으로 그려낸 수묵화는 200여 년 전 민초들의 희로애락으로 채워졌다.

'왕의 남자'(2005)로 첫 사극 천만 영화를 선보인 이준익 감독이 '사도', '동주', '박열'에 이어 열네 번째 영화 '자산어보'를 통해 다시 역사 속 인물을 조명한다.

윤동주 옆의 송몽규, 박열 옆의 후미코처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에도 애정을 보였던 감독은 이번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형 정약전과 정약전의 옆에서 어류학서 '자산어보' 집필을 도왔던 섬 청년 창대를 불러냈다.

정약용과 정약전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학자로, 수많은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이지만, 창대는 정약전이 '자산어보' 서문에 남긴 것이 전부였다.

정약전은 어보를 만들기 위해 두루 만나본 섬사람들의 말이 제각기 달랐으나,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한 젊은이 창대는 "성품이 신실하고 정밀하며 물고기와 해초, 바닷새 등을 모두 세밀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해 그 성질을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하였다"며 그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했다고 적었다.

순조 1년(1801) 신유박해로 형제 중 정약종은 참수를 당하고, 정약전(설경구)과 정약용(류승룡)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다.

호기심이 많았던 정약전은 성리학 대신 지천으로 보이는 바다 생물에 관심을 두게 되고, 섬 청년 창대(변요한)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창대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한다.

양반에게 버림받은 서자였던 창대가 홀로 글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정약전은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간다.

이 감독은 "사극을 찍어 오면서 궁극에는 근대성이라는 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고, 커다란 사건이나 정치, 전쟁사로 그 시대를 규정하는 건 오류라고 생각한다"며 "시대와 불화를 겪은 개인을 하나씩 찾다 보면 집단이 가진 근대성의 씨앗이 보인다"고 역사 속 인물에 천착하는 이유를 밝혔다.

영화는 촬영을 위한 제반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흑산도 대신, 흑산도에서 가장 가까운 도초도와 비금도, 자은도에 촬영했다.

여러 차례 불어닥친 태풍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태풍이 남기고 간 파도는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냈고, 이 감독은 "자연이 우리 영화의 스태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을 만큼 영화는 섬의 절경을 눈부시게 담아냈다.

첫 사극에 도전한 설경구는 감독이 "분장을 하고 등장했을 때 우리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 같았다"고 감탄할 정도로 본인의 걱정이 무색하게 조선 시대 학자로 녹아 들어갔다.

임금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꾼, 시대를 앞서간 학자의 면모는 물론 무식하고 욕심 많은 흑산도 관리 별장(조우진)을 윗전과 친하다는 거짓말로 속여먹고, 지낼 곳과 먹을 것을 내어준 따뜻한 인심에 수줍은 듯 할 말은 다 하는 흑산도 여인 가거댁(이정은)과 나누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로 가벼운 웃음까지 도맡았다.

감독의 설명대로 같은 흑백 영화지만 '동주'가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고 요절한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인 만큼 '흑'에 무게가 실렸다면, '자산어보'는 유배지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섬에서 따뜻한 사람들이 이어가는 소박한 삶은 '백'에 기울었다.

중후반까지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진행되는 섬마을 속 이야기는 창대가 글공부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준익 감독과 배우 설경구가 불러 모은 화려한 출연진이 영화를 촘촘하게 채운다.

새로운 차원의 밉살맞음으로 웃음을 선사한 조우진은 물론, 오랫동안 이 감독과 함께해 온 정진영부터 류승룡, 동방우(명계남)와 방은진, 김의성 등이 짧은 분량에도 우정으로 함께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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