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사법 불신의 미래

이승우 / 2025-05-07 09:00:01
  • facebookfacebook
  • twittertwitter
  • kakaokakao
  • pinterestpinterest
  • navernaver
  • bandband
  • -
  • +
  • print
▲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 (서울=연합뉴스)

[율곡로] 사법 불신의 미래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살다 보면 타인과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긴다. 대화로 의견 차이를 조정해 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 전세 계약 하나를 놓고도 소송까지 가기도 한다. 이때 양쪽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사람이 판사(判事)다. 우리나라에서 판사는 법원을 구성하는 법관으로서 재판의 심리·판결 업무를 보는 공무원으로 정의된다. 시쳇말로 '사'자 직업군에 포함되는데 '선비 사(士)'나 '스승 사(師)' 대신 '일 사(事)'를 쓴다. 사람보다 직무에 무게를 둔 작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검사가 되는 경로를 출세 보증수표로 여기던 때도 있었다.

삼권분립에 기반한 현대 민주주의가 착근하기 전 왕정 시대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이 판관 역할도 겸했다. 왕의 말이 곧 법이었다. 다만 그렇게 권력이 1인에 집중됐던 시절에도 판결 공정성은 지고한 가치였다. 그 유명한 '솔로몬 왕의 재판'은 지금도 지혜로운 판결의 전범으로 회자한다. 반대로 그 심판 권한을 사적 오용한 사례도 많았다. 조선시대엔 사또나 원님으로 불린 고을 수령이 왕을 대리해 관할 지역 행정·사법권을 통할했는데, 사익에 치우친 판결로 원성을 산 관리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고전 춘향가 속 변 사또가 수청을 거부했단 이유로 춘향을 벌한 전횡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을 수령들의 재판은 대체로 불공정하다고 인식된 듯하다. 오죽하면 자의적인 고무줄 재판을 '원님 재판'이라 칭했을까.

우리 사법 체계는 행정부·군경·학교 시스템 등이 그랬듯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며 뼈대를 세웠다. 그래서 법원 구조, 판사 임용 방식 등이 일본처럼 대륙법 체계를 따른다. 판례와 관습을 중시하는 영미법계와 달리 대륙법계는 의회 입법을 존중해 법관은 이를 해석할 뿐인 전통이 있다. 죄형법정주의, 증거재판주의, 무죄추정 원칙도 주요 근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법부가 이런 원칙을 잘 지키는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사법 공정성을 평가할 잣대는 법리에 근거해 일관된 판결을 하고 있는지일 것이다. 그런데 국민 관심이 쏠린 주요 사건들에서 재판부 구성이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오는 일이 이젠 새롭지도 않다. 국민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03조에서 '양심'이란 주관적 개념이 부각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라는 객관적 가치가 흔들리는 느낌을 줄 정도다. 원님 재판이 떠오른다면 사법 시스템 자체를 신뢰할 수 있을까.

사법 불신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념 성향, 진영, 계층 등에 관계 없이 재판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사법의 정치화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법원 난입 사태가 일어나고 법관 신상을 털어 협박하기도 한다. 정치권에선 법원 판결 자체를 정치 개입으로 공식 규정하고 공격하는가 하면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존폐를 거론하는 극단주의적 발언마저 들린다. 이처럼 사법부 독립이 위협받는 환경은 역설적으로 사법부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만은 않다. 법치주의 보루인 사법부가 '법리'라는 가치 기준을 엄정히 수호하지 못한다면 법원의 존립 가치도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요즘 세상의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다. 자료 정리부터 코딩, 작화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데다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이며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 "AI로 대체할 직업 영순위는 판사"라는 말마저 나오는 건 그저 흘려넘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