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음악 그 자체로 드러낸 우아한 품격…빈 필 내한공연

임동근 / 2021-11-15 07: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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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무티와 빈 필이 선사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 빈 필하모닉과 리카르도 무티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빈 필하모닉과 리카르도 무티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빈 필하모닉과 리카르도 무티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직 음악 그 자체로 드러낸 우아한 품격…빈 필 내한공연

리카르도 무티와 빈 필이 선사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세계 최고의 악단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년 만에 다시 방한했다.

2019년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함께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선보였던 그들은 이번 내한 공연 첫날인 지난 14일 공연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와 슈베르트 교향곡 8번 '그레이트'를 연주했다. 지난번에 이어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교향곡들을 무대에 올린 셈이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빈 필의 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베를린 필이 화려한 스타 악단이라면, 빈 필은 본고장의 사운드를 간직하고 있는 악단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과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와 브람스, 말러와 신 빈악파에 이르는 동안 빈은 줄곧 클래식 음악의 중심이었고, 그 역사를 몸소 체험한 빈 필은 문화적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날 연주는 빈 필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했다. 단순히 훌륭한 해석이라든지, 뛰어난 연주력 같은 말로는 공연의 진가를 충분히 전달하기 부족하다. 빈 필과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진정한 음악 감상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화려한 테크닉이나 휘황찬란한 음향 효과가 아니다. 달콤한 선율도 아니다. 작곡가가 온 힘을 기울여 악보에 새긴 악상을 들어야 한다. 그 악상이 말하려는 바를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연주자의 본질적인 사명이다.

세계 최고의 악단 빈 필은 자신들의 연주력을 과시하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혹시 과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고 표현을 아꼈다. 무엇보다 악보 앞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빈 필은 독일 음악과는 다른 오스트리아 음악의 오묘함을 보여줬다. 베토벤과는 결이 다른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그 특질을 잘 드러낸다.

거침없는 확장의 에너지, 격렬한 대조를 동력으로 삼는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우아한 균형미를 잃지 않는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를 앞세우지 않는다.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의 연주는 그런 면에서 진정한 모차르트의 연주였다고 할 만했다. 전체 구조를 흐트러뜨리는 대목은 한 번도 없었다.

1악장에서 곡을 여는 옥타브 모티브로부터 음역과 표현의 폭을 줄이는 2악장, 리듬의 작은 유희인 3악장, 그리고 전곡의 악상을 유쾌하게 종합하는 4악장이 지나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더없이 유연하게 반응하면서도 고음 대 저음, 현악 대 관악, 선율 대 리듬 등 모든 면에서 균형을 유지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그레이트'는 감동적인 명연이었다. 4악장 시작 부분에서 잠시 약간 흔들린 것을 빼면 거의 완벽했고, 특히 2악장은 최상의 연주였다.

이 감동은 감정을 자극하는 데서 오지 않았다. 엄격하면서도 자유분방했다.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날 빈 필이 연주한 슈베르트는 실제로 그러했다. 악구의 호흡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데서는 더없이 엄격했지만, 그 호흡 내에서의 색채와 뉘앙스는 더없이 자유로웠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긴 호흡으로 긴장감을 점증적으로 쌓아 가는 이 작품의 특성을 훤히 꿰뚫고 있었고, 집요한 반복 리듬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악단을 독려했다.

금관과 팀파니가 전곡 내내 극도의 절제력을 발휘한 결과, 빈 필은 모티브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조형해냈다. 덕분에 관객들은 1악장 서주의 호른 솔로와 4악장 목관의 주제 사이(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떠올리게 하는)에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이나 2악장 중간에 끼어드는 공격적인 트럼펫 리듬이 4악장에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도취적인 리듬과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악상 사이의 관계가 이처럼 명징하게 드러나는 연주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악상들이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공포와 불안의 순간을 넘어(2악장) 모든 것을 달관하는 마지막 몸짓(4악장)으로의 신비로운 변모가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작곡가가 하고 싶었던 얘기일 것이다. 빈 필은 엄격하면서도 자유롭게 음악 그 자체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이번 공연은 마지막까지 하나의 선물과도 같았다. 마에스트로 무티는 특별한 앙코르도 준비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제 왈츠'였다. 덕분에 관객들은 삼박의 마지막 박을 끄는 빈 왈츠의 독특한 리듬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티와 빈 필의 공연은 빈 음악의 정수를 들려주었다. 한 음 한 음마다 품격과 우아함이 묻어났다. 이런 품격과 우아함은 자신을 드러냄으로써가 아니라 하나의 악단이 되어 작곡가의 정신을 드러낼 때 비로소 나타난다. 무티와 빈 필은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을 듣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을 다시 일깨워 준 게 아닐까.

lied99@hanmail.ne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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