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300년만 존재했던 손잡이잔의 '고졸한 미감'

김준억 / 2022-08-25 17: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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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랑, 박영택 교수 수집품 전시…"자연스러운 미감이 압권"
▲ 전시 전경 [현대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 전경 [현대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손잡이잔 [현대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 전경 [현대화랑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삼국시대 300년만 존재했던 손잡이잔의 '고졸한 미감'

현대화랑, 박영택 교수 수집품 전시…"자연스러운 미감이 압권"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전시장 가운데 길게 만들어진 좌대 위에 손잡이가 달린 잔 수십 개가 2열로 늘어서 있다.

오늘날 머그(mug)잔과 생김새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얼핏 봐서도 천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고대 유물 느낌이 난다.

이 잔은 손잡이가 달렸다는 뜻의 '파수부배'(把手附杯)로 불린다.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에서 약 300년 동안(4∼6세기)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25일 개막한 전시 '아르카익 뷰티-삼국시대 손잡이잔'에 선보인 유물들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경기대 교수가 오랫동안 수집한 손잡이잔 350여 점 가운데 미적 가치가 뛰어난 100여 점을 추렸다.

전시에 소개된 가야와 신라의 손잡이잔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뿔잔(角杯)을 비롯한 손잡이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잔들은 언덕의 경사면에 길게 만들어진 터널형 오름가마로 불리는 '등요'(登窯)에서 1천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낸 것이라고 한다.

토기가 아닌 도기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의 강도를 가졌으며 회청색과 먹색, 갈색 등 색감도 다채롭다.

잔들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워 흙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고졸'(古拙, archaic)의 미를 보여준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전시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간결한 형태와 소박한 멋에서 연유하는 자연스러운 미감이 압권"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10여 년 전국을 돌며 손잡이잔 수집에 나선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지방에 있는 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신라의 질그릇 잔 몇 점을 보고 지극히 평범한 민무늬의 흔한 신라 잔이었지만 기품을 느꼈다고 한다.

이 땅에서 300년가량만 존재했던 손잡이잔은 희귀성과 비교해 학술 가치가 없는 골동품으로만 여겨진다. 학술 가치를 지닌 문화유물이 되려면 그것이 어느 환경에서 어떻게, 어떤 유물과 동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지 내력을 갖춰야 하지만, 손잡이잔 대부분은 오래전 도굴돼 유통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수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잔으로 좁은 원통형 몸통에 직사각형 손잡이가 달린 것을 꼽았다. 기본적인 도형이 긴장감 있게 배치됐으며 입이 닿는 부분이 절묘한 각도로 벌어진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그는 잔의 표면 무늬가 대부분 만물의 기원이자 불멸을 상징하는 물과 비, 구름 등을 나타낸다며 미니멀하고 감각적인 도상들을 현대 추상화와 연결했다.

박 교수는 손잡이잔의 형태와 문양, 색채 등에 대한 사적인 감상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선보이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으며 단행본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고학자가 아니라 미술평론가인 만큼 온전히 시각 이미지로, 미술 작품으로 대한다며 이번 전시와 책은 시각적 독해나 고백의 성격이 짙다고 덧붙였다.

전시 기간은 10월 16일까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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