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가 된 피아노 선율…제천영화제 개막작 '뮤직 샤펠'

오보람 / 2023-08-1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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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소재…"트라우마 가진 음악가 이야기"
▲ 영화 '뮤직 샤펠' 속 한 장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뮤직 샤펠' 속 한 장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뮤직 샤펠' 속 한 장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스릴러가 된 피아노 선율…제천영화제 개막작 '뮤직 샤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소재…"트라우마 가진 음악가 이야기"

(제천=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이곳에 왔으니 여러분은 이미 모두 승자예요."

저택 '뮤직 샤펠'의 안내인이 격려의 말을 건네자 제니퍼(타커 니콜라이 분)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무대를 밟게 된 12명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이 클래식 경연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는데, 대회 전 모든 참가자는 뮤직 샤펠이라 불리는 저택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선 외부와 교류가 단절되고 휴대전화 사용마저 금지된다.

이런 폐쇄성은 젊은 음악가들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대상을 노리는 제니퍼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예민해지고 과격해진다. 그가 경쟁하는 상대는 다른 참가자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망령이다.

10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19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개막작 '뮤직 샤펠'은 음악 영화의 외피를 한 스릴러다. 음악이 주요 소재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진짜 주제는 한 인간에게 깊숙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다. 제니퍼가 갑작스레 찾아든 과거의 기억과 싸우는 과정은 여느 스릴러 영화 못지않은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제니퍼는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15년 만에 고향 벨기에로 왔지만 내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큰 대회를 앞둔 부담감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간간이 나오는 제니퍼의 회상 장면이 진짜 이유를 설명해준다.

제니퍼의 어머니는 딸과 자신을 일체화한 나쁜 엄마의 전형이다. 딸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인 그는 제니퍼가 8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부터 '줄리아드 음대' 노래를 부른다. 반면 제니퍼의 아버지는 자기 형편에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건 사치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사들인 새 피아노를 보란 듯 망치로 때려 부수기까지 한다. 부부의 갈등은 갈수록 폭력적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아버지에 관한 중간 서사는 생략한다. 어머니는 제니퍼가 스물세 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 옆에 꼭 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콩쿠르 출전 전 "네가 반드시 우승할 걸 믿는다"며 압박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제니퍼에게 어머니는 자신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봐 준 은인인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짐 혹은 극복해내야 하는 과제다.

극 후반부로 가면서 제니퍼의 불안은 최고조로 달한다. 그의 숨통을 조이는 트라우마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면서다. 요동치는 마음을 추스르기도 버거운 와중에 참가자 중 누군가가 제니퍼를 뒤흔드는 음모까지 벌인다.

결승 무대에 오른 제니퍼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때 비로소 폭발할 것 같던 감정이 해소된다. 이 장면은 '뮤직 샤펠'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5분 넘게 이어지는 신들린 연주와 표정 연기는 저절로 숨을 죽이고 스크린을 지켜보게 만든다.

피아노 연주 장면은 대역과 편집을 활용해 만들어졌지만, 제니퍼 역의 니콜라이가 직접 피아노를 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다. 니콜라이는 출연 결정 이후 어깨와 팔 동작은 물론 고갯짓과 시선 처리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악에 받친 듯 건반을 두드리는 그의 모습이 제니퍼 그 자체로 보이는 이유다.

도미니크 데루데르 감독은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뮤직 샤펠' 시사회 전 무대에 올라 "트라우마를 가진 음악가란 아이디어를 토대로 구상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데루데르 감독은 영화 '에브리바디 페이머스!'(2000)를 통해선 노래에 재능이 없는 딸과 가수가 되라며 그를 부추기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바 있다.

이 작품을 만든 뒤 미국으로 건너간 데루데르 감독은 제니퍼처럼 15년 만에 벨기에로 돌아와 '뮤직 샤펠'을 연출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오는 13일에도 CGV제천점에서 이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영화제는 오는 16일까지 이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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