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사진의 관습 깬 데보라 터브빌 국내 첫 전시

박의래

2026-10-26 10:00:43

인물의 내면과 공간에 깃든 기억 포착…약 200점 전시
전시공간 피크닉서 '데보라 터브빌: 분위기'…내년 2월 28일까지
데보라 터브빌 작 '배스하우스' [피크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데보라 터브빌 [피크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데보라 터브빌: 분위기' 전시 전경 [피크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데보라 터브빌 작 '보이지 않는 베르사유' [피크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데보라 터브빌: 분위기' 전시 전경 [피크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낡은 목욕탕에 모인 여성들은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은 채 각기 다른 곳을 응시한다. 빛바랜 벽과 흐릿한 윤곽, 어딘가 불안한 듯한 분위기는 화려한 의상과 매혹적인 모델을 내세우던 기존 패션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 사진가 데보라 터브빌(1932∼2013)은 이처럼 선명한 아름다움 대신 인물의 내면과 공간에 깃든 기억을 포착하며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구축했다.

전시공간 피크닉에서 터브빌의 국내 첫 전시 '데보라 터브빌: 분위기'가 열리고 있다. 빈티지 프린트와 콜라주 원본 등 기존 작품 102점과 뉴욕에서 새롭게 제작한 프린트 88점 등 약 200점을 선보인다.

터브빌은 1970년대 패션 사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끈 작가로 꼽힌다. 패션 잡지의 에디터로 일하다 3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사진을 시작한 그는 옷과 모델을 선명하고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났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카메라의 시선을 피한 채 생각에 잠겨 있고, 낡은 실내와 흐릿한 빛은 장면에 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전시는 패션 사진부터 건축 사진, 후기 포토콜라주까지 터브빌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조명한다.

터브빌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1975년 미국 패션잡지 보그에 실린 '배스하우스'(Bathhouse)다. 뉴욕의 오래된 공중목욕탕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 다섯 명을 촬영한 이 작품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던 당시 패션 화보와 달랐다. 낡은 타일과 침울한 분위기, 카메라를 외면한 인물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항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패션 사진을 상업적 목적을 넘어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 다루려 했던 작가의 태도가 드러난다.

터브빌은 인물뿐 아니라 오래된 건축 공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81년 출간한 사진집 '보이지 않는 베르사유'(Unseen Versailles)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재클린의 의뢰로 베르사유 궁전의 비공개 공간을 촬영한 작업이다.

그는 천으로 덮인 가구와 먼지 쌓인 방, 세월의 흔적이 남은 조각상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때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궁전은 그의 사진에서 화려함보다는 쇠락한 아름다움과 사라진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피크닉 측은 "터브빌은 영화와 문학의 서사를 사진에 접목하고, 기억과 상상을 뒤섞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세계를 만들어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평생 탐구한 현실과 허구 사이의 아스라한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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