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왔다가 파헤쳐진 조부 묘소 본 손자 "너무 황당해 손 떨려"

이성민 / 2025-10-03 0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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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얘기했던 산 주인이 그랬을 것" 고소…주인 "근처도 안 가"
▲ 산소 절토된 터에서 허탈해하는 장씨 (음성=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장모씨가 절반가량 절토된 할아버지 산소 터 위에서 허탈해하고 있다. 장씨가 바라보는 곳에 나머지 절반이 있지만 수풀에 가려 보이진 않는 모습. [장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벌초왔다가 파헤쳐진 조부 묘소 본 손자 "너무 황당해 손 떨려"

"이장 얘기했던 산 주인이 그랬을 것" 고소…주인 "근처도 안 가"

(음성=연합뉴스) 이성민 기자 = 경기 수원에 거주하는 장모(60대)씨는 지난달 26일 충북 음성군 대소면 야산의 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가 까무러치게 놀랐다.

추석을 맞아 풀을 깎고 제사도 지내기 위해 들렀는데 산소의 절반가량이 절토돼 있었다.

장씨는 최근 연합뉴스 통화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공훈장이 최근 수여돼 제사를 모시면서 할아버지께 보여드리려고 들고 왔는데 황당한 광경에 손까지 떨렸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벌초할 생각으로 예초기까지 메고 왔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산소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죄송한 마음만 안고 결국 하산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산소를 훼손한 용의자로 산주인 A(70대)씨를 지목했다.

야산을 밭으로 개간해 농사를 짓거나 임대하고 있는 A씨가 이장(移葬)을 종용하기 위해 본보기로 일부를 절토하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했다.

장씨는 "지난해 벌초를 하러 왔을 때 A씨가 제게 이장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며 "그 직전 해에는 누군가 산소 바로 앞을 3m 높이 절벽으로 깎아 놓은 일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다 이장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땅속에 묻힌 할아버지 유해가 비바람에 유실되진 않을지 걱정"이라며 "산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며 괴로워했다.

관습법상 묘지가 토지 소유주의 승낙 없이 조성됐다고 하더라도 20년 이상 존속하면 묘지 주인에게 해당 토지에 대한 사용권(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

해당 묘지는 70년 가까이 A씨 야산에 터를 잡고 있었고, 아버지를 어릴 적 여읜 장씨가 수십년간 이 묘를 관리해왔다고 한다.

장씨는 A씨를 분묘발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분묘발굴죄는 묘지 주인의 동의 없이 분묘를 훼손하거나 이장할 경우 적용되며,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A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씨는 "장씨의 묘 주변에 간 적이 없다"며 "올해 초 내가 아닌 다른 임차인이 옥수수 농사를 짓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나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묘를 건드린 것 같다"고 말했다.

묘 주변이 과거 절토돼 낭떠러지가 된 것과 관련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장씨는 "산소는 폭이 2m 이상이고 높이도 70㎝ 정도 된다"며 "묘를 보지 못하고 실수로 건드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경찰이 정확한 조사를 위해 묘를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해 이장이나 복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묘가 훼손된 채 방치돼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3일 "현장 조사를 마치는 대로 장씨와 A씨를 모두 불러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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