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뜬 제주4·3 사뭇 달라진 분위기 "봄이 오려나!"

변지철 / 2021-04-03 10: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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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봄날의 소망·기쁨 드러내
4·3 유족들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 절반이 풀렸다"
▲ 행방불명인 표석 위로 뜬 무지개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위로 무지개가 떠 눈길을 끌고 있다. 2021.4.3 jihopark@yna.co.kr

▲ 위패봉안실 찾은 유가족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을 찾은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2021.4.3 jihopark@yna.co.kr

▲ "잊지 못할 4·3…편히 잠드소서"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73회 제주 4·3 희생자 추모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희생자 묘역을 찾은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2021.4.3 bjc@yna.co.kr

▲ '이제 편안히 잠드시길'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은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2021.4.3 jihopark@yna.co.kr

무지개 뜬 제주4·3 사뭇 달라진 분위기 "봄이 오려나!"

73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봄날의 소망·기쁨 드러내

4·3 유족들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 절반이 풀렸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백나용 기자 = 3일 열린 73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은 다른 여느 해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지난 2018년 4·3 70주년 당시 전국적으로 4·3을 애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을 찾아 유족과 도민을 위로했을 때와 비교해도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피어올랐다.

지난 2월 4·3 유족과 제주도민 전체의 오랜 여망을 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돋아났기 때문이다.

개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던 4·3 수형인들이 4·3특별법 개정으로 일괄재심을 통한 명예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통계상 불법 군사재판에 의한 수형인은 2천530명으로, 이중 개별 재심을 통해 368명(행방불명 수형인 343명, 생존 수형인 25명)이 억울함을 풀었다.

또 위자료 형식으로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의 단초가 세워졌고, 정부 차원의 추가 진상조사도 본격적으로 다시 이뤄지게 됐다.

그래서일까.

살짝 걷힌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추며 4·3평화공원에 희망의 무지개가 떴다.

비가 오지 않은 맑은 날씨였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간소하게 치러지지만 않았다면 좀 더 밝은 분위기의 4·3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또 제주의 '봄'이 한층 무르익었다는 의미에서 '돔박꼿이 활짝 피엇수다'('동백꽃이 활짝 피었습니다'란 뜻의 제주어)란 추념식 타이틀이 붙었다.

이날 김수열 시인이 쓰고, 오임종 4·3유족회장이 낭독한 묵념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우러나온다.

'마침내 봄은 오려나 봅니다'로 시작하는 묵념사는 73주년 4·3을 맞이하는 오늘을 '4·3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의 디딤돌 하나를 놓는 날'이자 '우리의 4·3이 따뜻한 봄으로 기억될 때까지 새롭게 시작하는 봄날'이라고 말했다.

73주년 추모 영상에서도 봄날에 대한 소망이 엿보였다.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 씨는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의 에세이집에서 발췌한 '4·3, 이 찬란한 비애'를 낭송했다.

'4·3, 그 참혹한 바다를 건너온 자들이여. 이제 그 깊은 감옥에서 나와 … 오늘만큼은 그날의 어둠에서 빛의 꽃그늘로 걸어 나오시길'이라며 많은 희생자를 애도했다.

무엇보다 매년 슬픔으로 가득한 유족들의 사연에서도 기쁨이 묻어났다.

이날 4·3사건 당시 부모와 오빠를 잃은 손민규(87) 할머니의 사연 '할머니의 꿈'을 외손녀 고가형(17) 양이 읽었다.

손녀는 "지난 3월 할머니의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손민규 할머니의 오빠는 군사재판을 받고 복역 중 행방불명됐는데, 지난달 16일 4·3 행방불명 수형인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손녀는 "할머니는 4·3에 대해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지난날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다행이라고 한다"며 할머니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의 절반이 풀어졌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4·3 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희생자 표석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아침 일찍부터 제를 올리는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성한 자식들은 제를 올리는 아버지가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받쳐 들었다. 땅은 이미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질퍽해졌는데도 유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마를 땅에 맞대며 절을 올렸다.

위패봉안실을 찾은 양수자(79) 할머니는 "올해는 아버지가 70여 년 만에 누명을 벗어 그래도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6살 때 양 할머니의 가족은 모두 집 밖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당시 칼에 찔렸던 자신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위패봉안실에) 해마다 몇십 년간 왔지만, 여기만 오면 그때 그 기억으로 심장이 떨린다"면서도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아버지가 지난달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예년보단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하늘에서 우리 모든 식구가 억울함 없이 편히 쉬기만을 바란다"며 눈물을 훔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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