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사에서 사양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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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진안 마이산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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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전경. 봉우리 밑으로 탑영제와 금당사가 보인다.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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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사 극락보전과 지장전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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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암마이봉의 타포니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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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시인 시비(詩碑)와 시를 새긴 조형물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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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부부공원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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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가 핀 탑사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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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사 천지탑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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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은수사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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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내려다본 마이산과 은수사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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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연인의길 프로포즈존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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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양제에서 바라본 마이산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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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바라본 마이산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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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에 잠긴 마이산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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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묘 회덕전 [사진/백승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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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묘 암벽에 새긴 '주필대' 글씨 [사진/백승렬 기자] |
[걷고 싶은 길] '천의 얼굴' 마이산을 걷다
금당사에서 사양제까지
(진안=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기묘하게 솟은 두 봉우리, 절벽에 매달린 꽃송이, 신비로운 돌탑. 그곳에 스며든 연인들의 사연까지.
마이산은 철 따라, 세월 따라, 방향 따라 매무새를 바꾼다. 시공의 변화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 가서 걷고 보지 않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이산, 부부산, 서다산, 용출산, 속금산, 돛대봉, 용각봉, 마이봉, 문필봉…
모두 전북 진안의 마이산을 부르는 이름이다. 별칭 없는 산도 드물지만, 이렇게 많은 명칭을 가진 산이 또 있을까.
눈앞에 변함없이 우뚝 서 있음에도, 동일성과 정체성을 거부하는 이 산은 오랜 세월 만인(萬人)의 가슴에 만가지 상념을 일으켜 왔음에 틀림없다.
길든 짧든 마이산을 바라보며 걸어야 한다. 북쪽으로 갈 것인지, 남쪽으로 갈 것인지, 갈림길에서 마이산 남쪽인 금당사 일주문 앞에 차를 세웠다.
금당사로 들어가 탑영제, 부부공원, 탑사, 은수사, 천왕문, 연인의길을 거쳐 사양제로 나오는 코스다.
◇ 천년고찰과 저수지
금당사. 시작부터 천년고찰이라니. 창건 연도가 '백제 의자왕 10년'(650년)인지 '신라 현덕왕 6년'(814년)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사찰의 약사를 일견하고는 깜짝 놀라 극락보전의 팔작지붕이며 돌계단, 석탑 기단까지 다시 한번 세심히 훑어본다.
원래는 서쪽으로 350m 올라간 지점에 있는 자연 동굴을 법당으로 만든 절이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75년(숙종 1년) 현재 위치에 다시 세웠다.
극락보전에서는 조선 후기에 은행나무로 만든 목조 아미타불좌상이 은은한 미소로 중생들을 맞고 있다.
금당사는 구한말 전봉준의 큰딸이 피신했던 곳이라는 얘기가 전한다. 실제로 큰딸 전옥례의 무덤은 진안에 있다.
이 절에 소장된 두 개의 보물, 17세기의 걸작인 길이 9m의 괘불탱화와 조선 세조의 공식적인 교지 문서인 '강진 무위사 감역교지'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금당사에서 10분쯤 걷다 보면 탑영제라는 저수지가 나온다. 산길에 갑자기 나타난 물은 산등성이를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낸다.
마이산의 탑이 물에 비치기를 바라는 뜻에서 탑영제라는 이름이 지어졌는데, 실제 물에 비치는 건 탑이 아니라 마이산이라고 김희경 문화관광 해설사는 설명했다.
마이산은 지질학적으로도 희귀한 특징을 지녀 2019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7천만년 전 백악기 후기에 자갈과 모래가 결합해 형성된 역암(礫巖)으로 이뤄져 있는데, 오래전 호수였던 이 지역의 지반이 솟아 표면 위로 올라왔으며, 무른 것은 깎이고 단단한 것만 남아 바위가 됐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마이산 곳곳에서 암석 표면에 벌집 모양의 구멍이 생긴 타포니(Tafoni) 지형을 볼 수 있다.
걷다 보니 길 양쪽의 나무는 벚나무다. 봄이라면 만개한 벚꽃이 장관을 이뤘을 것이다.
◇ 삼의당과 담락당
이 한 봄 고운 꽃에
달빛마저 드리우니 달빛에 비친
꽃이 그 더욱 고웁고녀
곱고도 또 고운빛이 우리 집에 비치오
- 담락당 -
밝은 달 고운 빛이 서로 엉겨 가득한데
꽃 같고 달도 같은 우리 임을 마주 대하노니
그 뉘 세간영욕이 이보다 더하리오
- 삼의당 -
삼의당 김씨(1769∼1823)와 담락당 하립(1769∼1830)은 부부 시인이다. 삼의당 김씨는 조선시대 여류 시인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날한시에 남원의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시를 지으며 평생 부부의 연을 이어간 이들은 결혼 후 30대 들어 진안으로 옮겨와 살았다.
이 부부를 기리는 시비(詩碑)와 사당이 탑영제 끝에 부부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돼 있다.
이 공원이야말로 마이산 봉우리(암마이봉·수마이봉)와 한시(漢詩)의 쌍관처럼 조응하고 있다.
부부산이라는 별칭의 배경에는 전설도 있다.
먼 옛날 산신 부부가 하늘로 승천할 때 이를 본 한 아낙이 소리를 내어 부정을 타서 승천하지 못하게 됐고, 남편은 수마이봉(681m)이, 아내는 암마이봉(687m)이 됐다고 한다.
부부산과 산신부부 전설, 부부시인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 그 관계의 필연성에 대한 인문학적 증거물일지도 모르겠다.
◇ '탑은 왜 쌓았을까'
탑사는 이미 유명하다. CNN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고 보도했고, 프랑스 미슐랭 그린 가이드는 별 3개 만점을 줬다.
전북 임실에 살았던 이갑룡 처사가 25세 때인 1885년 마이산에 입산해 30여년에 걸쳐 혼자 108기의 석탑을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이 중 80여기가 민간 사찰인 이 탑사에 남아 있다. 천지탑, 오방탑, 월광탑, 일광탑, 약사탑, 중앙탑 등 크고 작은 탑들에는 이름도 붙어 있다.
그런데, 보는 내내 궁금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탑을 쌓았을까'
탑사 대웅전 밑에는 배롱나무가 연분홍 꽃잎을 활짝 피웠다. 고개를 드니 북서쪽 절벽엔 탑영제에서부터 보이던 타포니가 연회색 거친 표면을 드러내고 있다.
그 순간, 절벽에 매달린 꽃을 보았다. 절벽의 거지반을 타고 오른 넝쿨에 드문드문 피어오른 능소화가 남아 있었다.
7월 말께 한창 피었다가 이제 스러져 가는 꽃잎이 애처롭다.
김희경 해설사는 "능소화는 예전에 양반들이 자기들만 보려고 했던 꽃으로 평민 집에는 함부로 심을 수 없었다"며 "탑사 절벽의 능소화는 높이가 40m나 되는데 넝쿨은 여러 줄기가 아니라 단 하나의 줄기로 절벽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운다"고 말했다.
또다시 궁금해졌다. 능소화는 왜 저렇게 높이 올라가는지.
꽃말을 찾아봤다. 그리움과 기다림이다. 누군가가 그리워 그리 높이 올라갔단 말인가.
◇ 은수사와 이성계
탑사를 정면으로 보며 오른쪽 계단으로 우회하면 은수사 가는 길이 나온다. 숲 사이로 탑사의 측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길이다. 10여분 걸어 오르면 절에 닿는다.
은수사 또한 탑사에 못지않게 독특한 풍광과 기운을 품고 있다.
두 개의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양어깨에 짊어진 듯 자리한 이 사찰은 이곳이 속세인지, 극락인지 잠시 현실감각을 무디게 한다.
마이산은 태조 이성계가 와서 건국의 꿈을 안고 기도했던 곳으로 곳곳에 태조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은수사는 특히 연이 깊다.
절 이름은 이성계가 이곳 물을 마시고 은같이 맑다고 해 붙여졌다. 그가 직접 심은 청실배나무가 사찰안에서 아직도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은수사 안에 있는 청실배나무와 줄사철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마이산은 시대별로 이름이 달랐다.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 고려 때는 용출봉(湧出峰)으로 불렸는데, 조선 초기에는 태조 이성계가 속금산(束金山)으로 이름 지었다.
조선 건국 전 꿈에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성계에게 금척(金尺, 금으로 된 자)을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를 가지런히 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후일 이성계가 마이산을 지나가다 산봉우리가 마치 꿈에서 본 금척을 묶어놓은 듯하다고 해 속금산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성계의 성(姓)인 이(李)가 목성(木姓)이므로, 목(木)과 상극인 금(金)의 기운을 묶어둘 필요가 있어 산 이름을 속금산이라 지었다는 말도 있다.
산 이름을 마이산으로 바꾼 건 태조의 아들 태종이다.
계단을 올라 왕이 하늘로 오른다는 뜻으로, 이성계가 '천왕문'(天王門)이라 명명한 곳을 지나 다시 조금 내려오면 '연인의길'이 시작된다.
◇ 서어나무가 있는 숲길
연인의길은 원래 마이산 북측 진입로에서 시작해 30분 정도 걸어 오르는 산책로다. 예전에 버스가 다니던 구도로인데, 지금은 차량을 통제하고 걷거나 전기 자동차로만 이동할 수 있다.
스마일존, 포옹존, 뽀뽀존, 프로포즈존 등 연인의 발전 단계를 조형물로 만들어 길가에 설치했다.
그 단계를 따라가자면 밑에서 올라와야 했지만, 거꾸로 내려가는 코스도 나쁘지 않다. 의식의 흐름은 시간을 역행할 때도 많으니.
거꾸로 가는 연인의길 마지막 조형물은 '스마일'이다. 한 남자가 팔을 한껏 벌리고 웃고 있다. 모든 사람을 품에 안겠다는 듯이.
연인의길은 정오의 한여름에도 태양을 가려줄 깊은 숲에 나 있다. 단풍나무, 서어나무, 리기다소나무, 가문비나무 등 키 큰 나무들이 즐비하다.
숲을 이루는 수종이 바뀌는 과정의 끝에 서어나무가 있으니, 서어나무가 있는 숲은 연륜이 깊은 숲이라고 한다.
연인의길은 부부산이나 부부시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조성 자체가 의도한 것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멋진 조합 아닌가.
연인의길을 다 걷고 나면 저수지인 사양제가 나온다. 물에 비친 또 다른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진짜인 양 눈을 현혹한다. 마이산 최고의 포토존이다.
◇ 진짜 마이산은?
예로부터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였다고 한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고 해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고 불렸다.
바라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서도 말의 귀, 코끼리 두 마리, 부부의 어깨, 사람의 엉덩이, 용의 눈과 뿔, 두 마리 새 등으로 변화무쌍한 자태를 뽐낸다.
이 수많은 형상과 이름이 모두 마이산이니, 진짜 마이산의 모습은 무엇일까.
여행을 마치면서 돌탑에 대해 스스로 던진 물음에 답해야 했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만큼 돌탑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가 떠돈다.
이갑룡 처사가 돌탑을 쌓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함이 나타난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중요한 건 간절함이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이듯, 간절함은 탑으로 쌓인다.
Tip
▲ 전북 진안의 둘레길은 모두 15개 구간 210㎞ 길이의 '진안고원길'로 조성돼 있다. 연인의길은 이 중 1구간인 '마이산길'에 속해 있다가 지금은 빠져 진안고원길과는 다른 산책길이다.
그러나 연인의길은 짧지만 탑사와 은수사까지 가는 길이 연결돼 있어 사찰을 보고 걸을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코스다.
일행 중 차가 두 대 있다면 남쪽이나 북쪽 중 어느 한쪽에 차를 놓고 다른 차로 반대편에 가서 걷기 시작하면 가는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남부주차장 쪽은 '금당사-탑영제-부부공원-탑사-은수사-천왕문-연인의길-사양제' 코스다. 내리막 계단이 힘든 사람은 이 순서로, 오르막이 힘든 사람은 반대 순서로 걷는 게 좋다.
차가 한 대밖에 없다면 금당사로 들어가서 탑사나 은수사까지 갔다가 돌아오거나, 연인의길로 올라가서 탑사·은수사까지 갔다가 돌아와도 좋다.
▲ 남쪽으로 간다면 금당사 일주문 가기 전 오른쪽에 있는 사당 '이산묘'에 들려보는 것도 좋다.
이산묘 회덕전에는 단군,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고종황제 4위가 봉안돼 있다.
입구 암벽에는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던 중 머물러 시를 읊고 기도한 것을 기념해 새긴 '주필대'(駐蹕臺)라는 글씨를 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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