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기행]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어울림, 대구 계산대성당
현경숙
2026-11-08 08:00:10
(대구=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천주교대구대교구 주교좌 계산대성당은 한국의 3대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힌다.
번화한 도심에 자리 잡고 있지만 방문자를 편안하게 맞아주는 아늑한 성소이다.
인근에는 문화유적지가 몰려 있어 근대 건축과 문화유산을 되돌아보는 시간여행의 출발점이 된다.
◇ 한국의 3대 근대 성당 건축
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파란 가을날. 계산대성당에서는 신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맑은 햇살 속에 10월 첫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금가루 같은 빛은 기도하는 손끝에서 부서지고 의식을 집전하는 신부의 상아색 사제복 끝단에서도 부드럽게 출렁였다.
차분하고 성스러운 미사였다. 성당 정원에서는 30개 종으로 구성된 음악종인 까리용의 청량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 전주 정동성당과 함께 한국의 아름다운 3대 성당으로 꼽힌다.
명동성당이 세워졌던 1898년 한옥식 성당으로 처음 지어졌다.
이 성당이 화재로 소실된 뒤 1902년 벽돌식으로 재건됐다.
1911년 주교좌대성당으로 승격된 뒤 1918년 증축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계산성당은 서울, 평양에 이어 한국에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이다.
◇ 로마네스크 양식에 고딕 양식이 가미된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 올린 성당 본체와 하늘 높이 치솟은 2개의 첨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면은 장미창으로 장식돼 있다.
반원 아치와 벽돌 구조가 빚어내는 장엄한 외관은 천주교 성당 건축 방식 중 하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다.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의 교차가 자아내는 고색창연은 계산성당에 얽힌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첨탑은 로마네스크 양식보다 기술적으로 좀 더 진보한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수직 상승감을 안기는 첨탑은 신과 진리를 향한 신앙적 갈망을 표현한다. 성당의 바닥 평면은 세로축이 가로축보다 긴 라틴 십자형이다.
◇ 한국의 순교 성인들에게 봉헌된 스테인드글라스
계산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1902년 제작됐다.
1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처음 모습 그대로 청신하게 빛난다.
가톨릭 성당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내부로 비치는 빛은 하느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일상의 빛이 색유리를 거치며 거룩하고 영적인 빛으로 바뀌는 시각적 체험을 통해 신도가 기도와 묵상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계산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 툴루즈에서 제작돼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해 1902년 대구에 도착했다.
계산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이윤일 요한 등 한국의 순교 성인 10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천주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한국의 천주교 성인에게 봉헌된 사례는 흔하지 않다.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창설 이후 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박해를 겪었다.
특히 4대 박해로 불리는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를 거치며 1만명 이상이 순교했다.
한국 천주교는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국 지식인들과 평신도의 자발적인 탐구와 의지에 의해 창설된 자생 교회이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자생교회인 한국 천주교는 신앙의 역사에서 독특하고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계산성당 제대에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해가 봉안돼 있다.
◇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은 …."
계산성당은 대구·경북 지역 천주교의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함께 한 종교 유적지이다.
이인성, 현진건, 이상화 등 대구 출신 근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교류했다.
멋스럽고 웅장한 계산성당은 당대 유명 인사들의 결혼식 장소로도 사용됐다.
1950년 11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식이 열렸다. 주례를 맡았던 허억 당시 대구시장은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은 …"이라며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바꿔 불러 하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는 에피소드가 전한다.
대구에서 태어났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계산성당에서 유아세례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계산성당 역사관에는 그에 관한 자료가 많다.
"당신이 태어났을 땐 당신만이 울었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미소지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땐 당신 혼자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그가 남긴 어록 중 하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맞아 방한했을 때 계산성당을 직접 방문해 기도하고 성직자, 수녀, 신도, 아이들과 만났다.
◇ 근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의 출발지
한국전쟁의 참화를 모면한 대구에는 문화유적지나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계산성당 주변에도 3.1만세운동길, 청라언덕, 이상화·서상돈 고택 등이 산재해 개화기 근대 문화의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90개 계단으로 이루어진 3·1만세운동길은 대한독립을 외쳤던 함성이 메아리쳤던 곳이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열기를 이어받아 계성, 대구고보, 신명 등의 학생들은 서문시장 장날이었던 같은 해 3월 8일 일본 순사의 눈을 피해 이 길을 통해 장터로 달려갔다.
청라언덕은 1893년부터 대구를 찾아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청라'란 푸른 담쟁이의 한자 말이다.
도심 속 녹색 정원인 이곳에는 챔니스주택,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 등 옛 선교사들이 거주했던 주택이 남아 있다.
낯선 이국에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가산을 털어 넣는 등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의료, 교육 사업에 투신했던 선교사들과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숨진 그들의 자녀들이 잠든 은혜의 정원이 언덕 위에 있다.
청라언덕에는 대구를 사과 명산지로 만든 서양사과나무의 시배지, 한국 최초 가곡인 '동무생각' 노래비도 있다.
대구의 사과 재배는 1899년 제중원(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을 설립한 존슨 의료 선교사와 계성학교를 설립한 아담스 선교사가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를 청라언덕과 제중원 사택에서 심으면서 시작됐다. 존슨과 아담스는 교인들에게 사과나무를 나눠주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하는 '동무생각'은 대구가 고향인 작곡가 박태준(1901∼1986)이 곡을 짓고 노산 이은상이 노랫말을 붙였다.
백합은 박태준이 흠모했던 여학생을 뜻한다. 여학생은 청라언덕에서 가까웠던 신명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 이상화 고택과 대구 약령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울림 큰 질문으로 시작하는 독립 염원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 이상화(1901∼1943)가 말년을 보내며 원고를 집필했던 집은 아직 보존돼 있다.
계산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 고택은 개발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보존 운동으로 지켜진 근대 문화유산이다.
이상화 고택 옆에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1850∼1913) 고택이 이전 복원돼 있다.
이상화의 형 상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었다.
동생 상백은 한국인 최초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다.
대구 약령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한약재를 공급해온 국제적 한약재 유통 거점이다.
대구 약령시의 역사는 360여년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자금조달과 연락의 거점이라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탄압받다가 1941년 폐쇄됐다.
광복 후 재개됐으며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키는 한약방, 한의원, 약재 도매상들이 밀집해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Copyright ⓒ K-VIBE. All rights reserved. Unauthorized reproduction and redistribution are prohibited.]